Page 54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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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일념(一念)이란 한 생각 스쳐지나가는 짧은 시간인                                     는 것이다.

         ‘한 찰나’로서, 성불이 한 찰나에 이루어짐을 뜻한다. 이런 관                                     어느 날 장자는 길을 가다가 거지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
         점은 앞서 설명했던 인도 불교의 것과는 매우 상반됨을 알                                       거지가 어릴 때 잃어버렸던 아들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장
         수 있는데, 실제로 인도와 중국의 불교를 모두 수용했던 고대                                     자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사람을 시켜 거지 아들을 데려 오
         티벳에서는 돈오(頓悟)와 점오(漸悟)에 관련된 두 나라 스님의                                    려 하였지만, 정작 거지 아들은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신을 데려가려고 하자 너무 놀라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장

           깨달음이 한 찰나에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 『명추회요』                                      자는 어떻게 하면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에서는 『법화경』에 나오는 용녀 (龍女)의 성불 이야기를 하나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거지로 분장시켜 거지 아들 옆에서
         의 예로 들고 있다. 용녀는 삼천대천세계와 바꿀 만한 가치가                                     같이 생활하게 만든 뒤, 차차 장자의 집에서 일을 하게 만들

         있는 보배 구슬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부처님에게                                      었다. 처음에는 화장실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바쳤다. 시간으로 따지면 구슬 하나를 부처님께 바치는 데는                                      점점 중요한 일을 시켜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는 재산 관리를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용녀는 자신이 성불                                     맡겼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무렵 장자는 거지 아들을 불러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보다도 더 빠를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놓고 그가 어릴 적 잃어버렸던 자신의 친아들임을 말해준
         이는 성불이 단박에 이루어짐을 비유를 통해 보여주는 내용                                       뒤 모든 재산을 물려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다.                                                                     이 이야기에서 거지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완전히 물려
           또 『명추회요』에는 나오지 않지만, 『법화경』 「신해품(信解                                   받는 데 수 십년의 세월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거지 아
         品)」에 나오는 ‘거지 아들의 고사’ 역시 성불의 속도와 관련이                                   들이 길에서 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때 곧장 장자가 자신의

         있다. 여기에는 먼저 막대한 부를 지닌 장자(長者)와 그가 오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라는 딱 한마디의 말을 했더라
         래 전 잃어버린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도에는 수천                                      면, 아버지의 재산을 단박에 물려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
         년간 계급제도가 존재했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인 장                                      실 이 이야기에서 장자는 부처님을, 거지 아들은 중생을 비유
         자(長者)에 대해서는 바라문이나 국왕 계급 모두 존중을 표시                                     한다. 부처님은 ‘자신이 본래 부처다’라는 사실을 단박에 자
         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춘                                     각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갖가지 방편을 사용하여 그 점

         장자에게도 딱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이                                      을 깨우쳐 주려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거지 아들이 본래 자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아들을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신의 아들인 것처럼, 중생 역시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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