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16년 5월호 Vol. 37
P. 42
니다(非內非外). 십법계의 중생을 관하기를 거울 속의 모 달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실제의 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
습(鏡中像)이나 물속의 달(水中月)과 같이 보아야 한다. 그 무 것도 없는 텅 빈 공허도 아니라는 것이다.
것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있다 그렇다면 물속의 달그림자라는 비유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
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끝내 실체는 아니 는 무엇일까? 첫째, 물속의 달은 진짜가 아니라 그림자에 불
지만(畢竟非實) 삼제의 이치가 뚜렷이 구족되어 있다.” 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假)’란 눈앞에 펼쳐진 현상적 존
재를 말한다. 우리들이 보고 있는 현상은 완전한 실상이 아
이상의 내용은 『백일법문』에 인용된 천태 대사의 『관음현 니라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이미지에 불과함으로 ‘가
의』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천태와 화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 (假)’로 표현된다.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로 바라보는 유견에
침 중에 가장 수승한 교설을 원교(圓敎)라고 분류하고, 원교 서 집착이 발생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
의 핵심을 중도(中道)라고 했다. 원교에 대해 천태 대사는 “중 망이 생겨난다. 그래서 중생은 내가 있다고 집착하고, 내가
도를 바르게 나타내는 것이며 (正顯中道), 두 변이라는 극단을 욕망하는 대상을 소유하고자 몸부림친다. 물속에 비친 달그
막는 것 (遮於二邊)”이라고 했다. 중도가 곧 원교라는 것이다. 림자의 비유는 그와 같이 유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기 위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존재를 중도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가르침이다. 물속의 달이 실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가
그에 대한 답이 바로 ‘물속의 달그림자(水中月)’와 ‘거울 속의 아니므로 ‘비가(非假)’이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진짜가 아
형상(鏡中像)’이라는 비유이다. 니라는 것이다.
이들 비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속의 달은 거짓이 둘째, 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없지 않다는 것이다. 흐르는
고, 거울 속의 형상은 환영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거짓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래서 모든 존재는 흐르는 강물 속에 일렁이는 달그림자처럼 것은 그곳에 달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속에 일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로만 해석할 수 렁거리는 달그림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없다고 외면
있다. 하지만 수중월을 그렇게만 이해하면 또 하나의 극단으 하는 순간 우리들의 삶은 공허에 빠져들고 허무주의에 매몰
로 치닫게 되며, 중도의 정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든 존재를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달그림자라는 비유는 어디까지나 유
‘공하고 실체가 없다’라고만 바라보면 ‘없다(無)’라는 변견에 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는 데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것을 넘어
치우쳐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천태 대사는 제법의 서 모든 것이 공하고, 아무 것도 없다고 바라보면 염세라는
실상은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다(非空非假)’라고 했다. 물속의 극단에 빠지기 때문이다.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는 완전히 없
40 고경 2016. 05.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