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6년 5월호 Vol.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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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 글 _ 박인석 ● 천태 대사가 본 진(眞)·망(妄) 이론의 문제점
남북조 시기는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매우 복잡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진 (眞)과 망(妄)에 관련된 당시 불교계의
진(眞)과 망(妄)이 논쟁에 대해서는 중국 천태종의 창종자인 천태 대사의 시각
을 빌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천태 대사는 중국 불교에 있
화합하는 이유 어 매우 큰 발자취를 남긴 분으로, 불교의 철학적 측면뿐 아
니라 당시 종교 지도자가 지녀야 할 리더십의 측면에서 있어
서도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천태 대사는 당시 중국 불교
계의 논쟁 가운데 특히 두 학파 사이에 벌어진 하나의 주제
에 주목하였다.
●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지론학파와 섭론학파 사이에 벌어
『명추회요』 143쪽에는 ‘진 (眞)과 망(妄)이 화합 진 논쟁으로, 이들이 격렬하게 다투었던 내용은 바로 ‘만법의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등장한다. 한 페이지도 안 근원’에 대한 것이었다. 천태 대사가 보기에 이 두 학파의 논
되는 분량이지만, 이 대목은 중국불교사의 아주 중요한 논쟁 쟁은 세상의 온갖 것들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벌어
하나를 풀어준 해법의 핵심 내용을 보여준다. 이 논쟁을 이 졌다. 천태 대사에 따르면, 지론학파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근
해하려면 우리는 6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원을 참된 마음, 곧 진심 (眞心)에서 찾았다. 이들은 『화엄경』
때는 중국의 역사에서 남북조(南北朝)로 불리는 시기로서, 수 계통의 『십지경론』에 근거하여 부처님이 지닌 한 점 티 없는
(隋)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 해당한다. 당시 중국 참된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불교는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었으니, 『화엄종』 계통의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은 늘 광명과 더불어 출현하시고, 광
『십지경론(十地經論)』에 기반한 지론학파(地論學派), 유식학 명 속에서 다양한 불보살과 기세간(器世間)을 나투신다. 이처
계통의 『섭대승론(攝大乘論)』에 기반한 섭론학파(攝論學派), 럼 지론학파에서는 광명으로 가득한 참된 마음을 만법의 근
그리고 『법화경』을 중심으로 삼아 성립한 천태지의 (天台智顗) 원으로 삼았다.
의 천태종(天台宗) 등의 다양한 불교학파가 번성했고, 저 유명 반면 유식학 계통의 섭론학파에서는 아뢰야식 (阿賴耶識)
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역시 출현하였다. 을 만법의 근원으로 삼았다. 그런데 ‘식(識)’이라는 명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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