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6년 5월호 Vol.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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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진이 없으면 의지할 식 (阿梨耶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오로지 참된 세계인 심진여문(心眞如
이 구절은 만법의 근원으로 진 (眞) 혹은 망(妄)을 단독으로 門)과 더불어 생멸의 세계인 심생멸문(心生滅門)을 함께 세웠
설정했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진 (眞)만으로 는데, 이 심생멸문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아리야식이다. 이
만법의 근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과위 (果位) 아리야식은 불생불멸의 진 (眞)과 생멸의 망(妄)이 ‘같지도 않
가 불생불멸한 것이므로, 현상세계의 생멸을 설명할 수 없다 고 다르지도 않은 방식’으로 화합한 상태를 말한다. 이에 의
는 뜻이다. 반면 망(妄)만으로 만법의 근원이 성립되지 않는 거하면, 참된 것이 허망한 것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는 것은 망(妄)만 있다면 생멸이 의지할 불생멸의 참된 세 사는 현상 세계의 허망함과 불완전함이 나타나지만, 허망한
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위의 인용 것이 말 그대로 허망한 줄을 철저히 알면 그 속에 불생불멸
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 (眞)과 망(妄)을 화합시켜 이러한 두 하는 참된 부처님의 세계가 곧장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지 난점을 모두 극복하고자 하였다. 진과 망을 화합시켜 이 세계의 근원과 현상을 모두 원만하
그리고 이 논리를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 바로 『대승기신 게 설명하고자 한 『대승기신론』의 관점은 6세기에 출현한 뒤,
론』이다. 이 『논』에 나오는 아리야식 (阿梨耶識)은 앞서 말한 7세기에 활동했던 원효나 법장 같은 훌륭한 교학자들에 의해
섭론학파의 아뢰야식과 범어 (梵語)는 동일하지만, 내용상의 크게 선양되었고, 이후 동아시아 불교 전반에 걸쳐 큰 영향
함의는 완전히 다르다. 『대승기신론』의 아리야식은 진 (眞)과 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성철 스님께서 견성 (見性)을 설명
망(妄)이 화합된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을 가리키는 반면, 섭 하는 부분 가운데 『대승기신론』을 인용하여 ‘아리야식의 허
론학파의 아뢰야식은 오로지 생멸의 망(妄)으로 이루어진 망 망한 부분인 삼세육추(三細六麤)의 무명을 남김없이 다 없애
식 (妄識)이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진망화합식의 면 확철대오(廓徹大悟)하여 진여본성을 꿰뚫어본다’는 설명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있는데, 바로 이런 말씀의 배경에 우리가 살펴본 ‘진과 망의
화합’에 근거한 마음 이론이 놓여 있는 것이다.
심생멸 (心生滅)이란, 여래장(如來藏)에 의지하므로 생멸심
(生滅心)이 있는 것이니, 이른바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생 박인석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
멸과 화합하여,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을 아리야 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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