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6년 5월호 Vol.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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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 글 _ 이인혜 왕이 샘이 났는지 그를 시험에 들게 하고자 눈을 하나 빼달
라고 했다. 사리불은 중생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고 크게 발
심한 터라 이까짓 눈쯤이야 하고 빼주었다. 옳거니, 걸렸구나
화를 내는 하면서 마왕이 그걸 땅에 버렸다. 내동댕이쳐진 자신의 눈알
을 보고 그만 화를 내는 바람에 사리불은 오래 쌓은 수행에
특별한 방법 서 퇴보했다. 마왕에게 패한 그가 반성을 하고 억겁 동안 각
고의 정진을 쌓아 부처님을 만났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수행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
는 아주 먼 겁 전부터 심안이 청정하여 모래알 같이 수많은
생을 받았던 일을 다 기억하며, 세간 출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 한 번 보면 통달하여 무장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경전을 봐도 어디에나 있고 일상 가운데도 늘 사리불도 그때 화를 냈던 종자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가끔
맞닥뜨리는 것이 화이다. 화는 터뜨려도 문제요 참아도 독이 돌발하였기에 ‘사리불의 진습(嗔習)’이라는 표현으로 『영락경』
된다. 부처님은 탐진치를 삼종 세트로 묶어서 화가 독이 된다 과 『능엄경』에 회자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수행자에게도 화
고 경계하셨다. 삼독 중에 화는 자기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 는 그만큼 다루기 힘들다는 얘기다.
고 친한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놓기도 하여 인생에 미치는 영 수행을 모르는 보통 사람으로서 나는, 화나는 일을 대할
향이 심대하다. 항상 제 마음을 지켜보고 경계하지 않으면 방 때마다 어쩌질 못하는 편이다. 상대가 나보다 세면 더 맞을까
심하는 사이에 쌓여있던 화가 튀어나오거나 미처 표출되지 겁이 나서 우물쭈물하다가 화낼 타이밍을 놓친다. 욕이라도
못한 화는 억눌린 채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수행을 많 하면서 덤벼볼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그땐 벌써 속
이 한 사람도 화 한 번을 참지 못해 뱀의 몸을 받았다는 전설 이 시끄럽다. 상대가 나보다 약한 경우는 착한 척 하느라 끓
이 강원도 어디쯤에 내려온다. 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뒤에 가서 괘씸해한다. 이러다 보니 오
부처님 제자 중에 가장 똑똑했던 사리불도 가끔 화를 내 랫동안 키워왔던 분노가 어쩌다 불쑥 튀어나오면 정도를 넘
는 습관이 있었다. 그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멀 는다. 그 결과 오랜 친구를 몇 잃고 나서야 화에 대해 얼마나
고 먼 과거 생에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데, 지켜보고 있던 마 미숙한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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