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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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두루 손과 눈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대답이 조금   ●

 모자란다.” “사형 (師兄)은 어쩌시렵니까?” 도오가 일렀다.   제55칙
 “온몸이 통째로 손과 눈이다.”  밥 짓는 설봉(雪峰飯頭, 설봉반두)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은 자비의 화신이  설봉의존(雪峰義存)이 덕산선감(德山宣鑑)의 문하에 머물
 다. 천개의 눈으로 중생의 슬픔을 살피고 천개의 손으로 돕  면서 공양주 소임을 보았다. 어느 날 밥이 늦어지자 배가
 는다. 베개? 자비의 정신과 실천이 차고 넘쳐서 웬만하면 그  고팠던 덕산이 참지 못하고 발우를 든 채 법당으로 갔다.
 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쳐도 자비다. 두루? 심  설봉이 구시렁거렸다. “저 노인네 아직 종도 치지 않았는
 지어 끊임없이 선행과 인덕을 베푸는 성자를 뛰어넘는 수준  데 어찌 호들갑인가.” 이 말을 엿들었는지 덕산은 얼른 방

 임을 일컫는다. 온몸이 자비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자비롭지   으로 돌아갔다.
 않아, 그런 그가 그저 흉측한 괴물로만 보인다. 무려 천수를   설봉이 암두에게 덕산의 구겨진 체면을 일러바쳤다. 암두
 들고 환영하는데도 머뭇거린다. 하물며 쌍수여도 눈물겨운데   가 말했다. “변변치 못한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를 알지
 말이다.        못하는군.” 둘 사이의 ‘뒷담화’를 전해들은 덕산이 암두를
             불러다 앉혀놓고 따졌다. “그대가 내 흉을 보았다지?” 암
             두가 귓속말로 소곤거리자 덕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튿날 법당에 들어온 덕산의 법문은 여느 때와 달랐다.
             암두가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저 노인네가 비로소 말
             후구를 알아들었군. 훗날 천하사람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말후구(末後句)란 최후의 한 마디다. ‘진리는 이것이다’ ‘인
          생은 무엇이다’ 존재와 세계의 이치에 대해 단 한 줄의 문장

          으로 요약하는 궁극적 잠언이다. 선사들이 죽으면서 남기는
          열반송도 말후구다. 말후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덕산
   서울 흥천사의 관세음보살상  은 새파란 후배들에게 능욕을 당했다. 천하의 호걸이라도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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