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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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   글 _ 이인혜                                  다. 진짜 공포는 따로 있는데 정면으로 대면할 힘이 없기 때

                                                                               문에 좀 덜 무서운 상대로 치환하여 공포를 쏟아 붓는다는
                                                                               것이다. 끝없이 겪으면서 끝없이 도망가는 식으로. 그럴 듯도
         혐오+공포=살생?                                                             하지만 그게 왜 벌레인지는 답이 되지 않는다.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는데, 혼자 있는 방에 들어왔을 때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혐오스럽고 무섭기 때문에 기어코 죽이게 된다. 혐오

                                                                               +공포=살생. 히틀러가 이러지 않았을까. 자비 문중의 제자가
                                                                               되어 이 나이 먹도록 이러고 산다는 게 한심하고 쪽팔린다.
                                                                                 벌레가 왜 무서운지는 알 수 없다. 피를 나눈 식구 중에 벌

                                                                               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유전은 아닌 듯하다.
           ●                                                                   나만 왜 이런지, ‘부모미생전’ 소식을 벌레에게 물어야 할 판
                     초며칠 전 티셔츠에 붙은 바퀴벌레 때문에 혼                                  이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벌레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고 발
         절 직전까지 갔던 일을 계기로, 오래 시달려온 벌레 공포증에                                     광을 하면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 두 분이 턱으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 무슨 계기로 이렇게 되었                                     로 서로 떠밀다가 진 사람이 휴지 한 장 뽑아들고 가서 살짝

         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그랬던 것 같다. 증세는 이렇게                                    잡아 문밖에 놓아주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반복된다. 가까운 거리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얼                                      만했다. 문제는, 이제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어붙는다.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않은 걸 후회할 때는 딱 이때뿐이다. 지금이라도 할까. 지역신

         힘이 빠진다. 얼마나 무서우면 예불시간에 ‘반야심경’을 외울                                     문에 구인광고를 낸다면 이럴 것이다. ‘남편 구함. 돈도 사랑
         때 ‘무유공포원리…’에서 벌레가 떠오를 지경이다. 나만 그런                                     도 필요 없고 벌레만 잡아주면 됨.’
         줄 알았더니 주위에 특정한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여럿                                        독거노인으로 혼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원치 않
         보았다. 길을 가다 다가오는 비둘기를 보고 기겁하는 후배를                                      는 공포와 맞닥뜨렸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가 방
         위해 그들을 쫓아준 일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친                                     에 불을 켜자마자 방바닥에 있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잽싸게

         구와 8층을 함께 걸어 올라간 적도 있다. 공포도 가지가지다.                                    장롱 밑으로 달아났다. 아주 큰 놈은 아니었으나 공포증에게
           심리학 책 많이 읽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                                     는 장수하늘소만큼 커 보였다. 잠시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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