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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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  글 _ 장웅연  다. 가끔 너무 아프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마음으로 탈출하고

          싶다. 그러나 그의 아주 더러웠던 말로(末路) 앞에서, 턱까지
          차올랐던 분노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무엇보다, 행복은
          언제나 남들의 지갑 속에 있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에는,   하지만, 무아(無我)의 논리 앞에선 자주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알고 지내는 스님과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인관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한다  계 스트레스로 무척 시무룩해했다. “모든 번뇌는 나를 내세

          우려는 업장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산사 주변의
          이름 없는 꽃과 풀을 보니 위안이 됐다.”는 말에 무언가가 뇌

          리를 번뜩 스쳤다. 이기고 이겨도 언젠가는 패배하게 마련이
          다. 아무리 진화를 거듭하더라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        승승장구하는 영웅보다 애당초 이길 생각이 없는 돌멩이가
 생명은 진화한다. 굳이 공룡이나 오스트랄로피  훨씬 더 부처님답다. 뜬금없이 ‘똥 막대기’나 ‘뜰 앞의 잣나무’
 테쿠스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10년 전의 나와   를 찾던 선사들의 심정 역시 이러했겠구나…, 싶었다. ‘그들’이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어쨌든 또는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  란 결국 나의 탐욕과 증오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진화의

 이다. 가만히 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일  끝은 완전한 퇴화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몸을 먹이고, 그 몸을 다시
 노동으로 내몰면서 버텨낸 결과다. 투쟁하고 타협하면서 때  ●
 로는 굴복하고 개기면서 나는 나를 지켜왔다. 나는 ‘그들’을   제54칙
 싫어하지만, 그들에게 짓밟혀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운암과 대비보살(雲巖大悲, 운암대비)
 을 숱하게 경험했다.
 한편으로 짓밟힘의 일상은 어찌하면 좀 덜 밟히고 또는 덜   운암담성(雲巖曇晟)이 천황도오(天皇道悟)에게 물었다. “대

 아프게 밟힐 수 있는지를 터득하는 수련의 과정이었던 셈이  비보살에겐 왜 그토록 손과 눈이 많습니까?” “밤에 손을
 다. 그래서 진화의 핵심은 극복이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라  뻗다가 무심코 베개를 만지는 이치다.” 운암이 고개를 끄
 던 헤라클레이토스는 천재였고 그만큼 세상을 못 견디던 자였  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말인가?”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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