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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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   글 _ 박인석                                  어를 통해 설명했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언어

                                                                               문자를 매개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법의 핵심을 곧
                                                                               장 전했음을 뜻한다. 한편 부처님은 성도 후 45년간 다양한
         불리문자(不離文字)와                                                           근기의 중생들을 위해 언어를 통해 불법의 진리를 설하셨는
                                                                               데, 이를 교(敎)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와 같은 ‘교’의
                                                                               방식을 벗어나 보다 특별한 방식으로 진리를 직접 전하기도
         교외별전 (敎外別傳)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선 (禪)이다.
                                                                                 7세기 이후 크게 발전한 남종선 (南宗禪)에 있어 불립문자의
                                                                               경향은 크게 강조되었다. 불립문자가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정신은 바로 언어와 문자로는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립문자의 정신은 불교학에서 언제
           ●                                                                   나 강조하던 ‘언어와 실상의 어긋남’을 가장 핵심적으로 붙잡
                     중국에서 전개된 선종의 초기 역사를 보면, 역                                 고 있는 구호로 생각된다. 우리가 아무리 진여, 법성 등과 같
         사적 사실과 더불어 신화적 요소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                                      은 ‘말’을 많이 되뇌고 기억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진리가 아

         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한 송이 꽃                                     닌 말의 영역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선사들은 일찌
         을 들어 올리자, 많은 대중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섭 존자 한 사람만이 미소를 지음으로써 부처님의 인가를                                         그런데, 불립문자라는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맥락을 보

         받은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를 그런 신화적 요소의 대표                                    면, 많은 경우 그것이 ‘책을 보지 말라’거나 ‘글공부를 하지
         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꽃을 든 부처님과 미소 지은 가섭 존                                   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 사이에 번개가 치듯 무언 (無言)의 교류가 일어난 직후, 부                                   ‘진리가 말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긍
         처님은 곧장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가섭에게 전했다’라                                      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불교의 근간이 되는 교(敎)에 대한 방
         고 선언하셨다.                                                              치로 이어지는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唐) 이후 선

           이 날 일어났던 부처님의 전법을 두고 선종에서는 불립문                                      사들이 남긴 어록을 보면, 그들이 불경에 매우 박식하였고,
         자(不立文字)·이심전심(以心傳心)·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용                                    학인을 지도하는 수단으로 불경을 매우 적극 활용했음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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