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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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민을 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종경                                          하고 지혜가 명료하며 많이 듣고 기억을 잘하는 사람이

         록』 100권에는 선사께서 요긴하다고 생각한 많은 불전들이                                          있으면 그를 위해 말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등장하는 것이다. 선사께서 먼저 수고로운 작업을 해주신 덕
         분에 후대의 선사들은 교(敎)와 선(禪)에서 중요시하는 법문                                         (중략)
         들을 조금 더 수월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런 이유
         에서 『명추회요』가 송나라 때 그렇게 각광을 받았던 것이 아                                         그러므로 원통(圓通)의 경지를 밟아 본 사람이 어찌 말이

         닌가 생각된다.                                                                  끊어졌다는 견해에 떨어지겠는가.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
                                                                                   은 단멸 (斷滅)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일 자심(自心)
           ● 불리문자와 교외별전                                                            을 곧장 깨달을 수 있다면 단도직입하는 것이고 가장 긴

           『명추회요』 320쪽에서 시작되는 ‘여러 가지로 말하나 모두                                       요한 것이니, 한 가지를 알면 천 가지가 따라 이해되어 모
         일심을 드러낸다’는 제목의 구절은 6페이지에 걸쳐 이어진다.                                         든 법을 남김없이 거두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교외별전
         그 중 321쪽에 나오는 질문과 대답을 보면 불리문자에 대한                                         (敎外別傳)이니, 이것을 떠나서 따로 기특한 도리는 없다.
         선사의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이를 같이 읽어보자.
                                                                                 연수 선사가 묻고 답한 내용을 보면, 한편에서는 언어·문

            【물음】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은 오직 학문을                                 자에 집착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끊고 단도직입케 하는, 교(敎) 밖에 따로 전한 이치인데,                                   것이 지닌 적극적인 기능을 크게 긍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
            어째서 지혜와 다문(多聞)을 빌려 자성과 모습을 자세히                                     다. 그리고 그 기준은 처방전과 실제의 약, 언어·문자와 실제

            논하는가? 말이 번다하면 이치가 숨고 물이 요동치면 구                                     의 깨달음의 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슬이 흐려지는 법이다.


            【답함】       종지를 드러내고 집착을 타파하기 위해 배
            움의 길에서 토론하는 것을 방편으로 털어 없애지만 종

            지를 통달하여 원융하게 소통하는 것은 문자해탈(文字解                                      박인석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
            脫)을 벗어나지 않으니, 『법화경』에서 “만약 근기가 영리                                   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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