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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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불리문자(不離文字), 곧 언어·문자를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국왕이 그를 시장이 있는 번화가에서

         여의지 않고 불법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                                     참수하되, 만일 형장에서 그가 후회하는 것 같으면 곧장 형
         가 함께 읽고 있는 『명추회요』 역시 이 불리문자의 정신에 입                                    을 집행할 것이지만, 그가 여전히 평정을 유지할 경우 사면하
         각해 있다.                                                                라는 명을 내렸다. 연수 선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담담
                                                                               히 후회 없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탄복한 국왕은 그의 평소

           ● 방편(方便)으로서의 교(敎)                                                   뜻을 따라 출가하도록 명하였다. 이후 연수 선사는 매우 치열
           영명연수 선사가 찬집한 『종경록』 100권과 그 후 100여 년                                 하게 수행했는데, 천태산 천주봉에서는 90일간 좌선에 들어
         이 지나 그것을 촬요(撮要)한 『명추회요』 3권에는 수많은 불                                    새가 옷에 둥지를 틀어도 모를 지경이 되기도 하였다.
         경과 논서가 인용되고 있다. 그 중에는 물론 선사들의 말씀도                                       이와 같이 철저하게 수행했던 연수 선사는 하루에 108가

         수록되어 있지만, 선사들의 발언은 하나의 ‘질문과 대답, 그                                     지 일과를 행했는데, 그 중 맨 마지막에 ‘글을 쓰는 작업’이
         리고 인증’ 가운데 보통 맨 앞이나 맨 뒤에 배치되어 언어와                                     들어 있다. 연수 선사는 선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자로 주고받는 내용들이 결국은 선의 소식을 전하고자 하                                       방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방편 가운데서도 특히 ‘부처님
         는 의도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 말씀’과 ‘조사들의 말씀’을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
           연수 선사가 단지 불립문자만이 아닌 불리문자의 정신을                                       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 역시 ‘말씀’인

         강조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조                                       한에는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진리를 가리킬
         금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송의 유명한 문인인 소동파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성철 스님께서도
         가 전하는 연수 선사의 생애를 보면, 선사는 젊은 시절 항주                                     같은 맥락을 말씀을 하셨다. 곧 대장경은 처방전이므로 처방

         인근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항구에 잡혀 오는 물                                      전에 따라 직접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말씀이다.
         고기를 가엾이 여겨 관전 (官錢)을 사용해서 그 물고기를 놓아                                    처방전 자체는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에 따라 약
         준 적이 있었다. 오늘날로 보면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을 지으면 실제로 병을 고치듯이, 언어·문자 자체는 진리가
         셈이다. 그래서 당시 오월의 국왕은 그를 참수하라는 명을 내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진리로 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
         렸는데, 정작 당사자인 연수 선사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이다.

         않았다고 한다. 아마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해 조금의 사사로운                                       불교는 흔히 팔만사천법문으로 칭해지는데, 그 많은 법문
         마음도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서도 더욱 더 요긴한 것은 무엇일까? 연수 선사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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