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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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따사로운 햇살의 에너지 때문에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  장하는 것이다. 이 논서는 당나라 때 현장에 의해 번역되어

 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실체로서 사과는 본성이 공하  법상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천태 대사는 이 논서가 번
 기 때문에 사과의 있음이 부정되는 ‘무(無)’가 성립된다.  역되기 전에 이미 『마하지관』을 통해 원교의 중심사상을 ‘유
 하지만 사과의 있음과 사과의 없음은 서로 모순되지만 둘   (有)’·‘공(空)’·‘역공역유(亦空亦有)’·‘비유비무(非有非無)’라는
 다 맞는 것이기 하다. 따라서 그 둘을 모두 긍정하는 ‘역유역  네 가지 명제로 설명했다. ‘무’가 ‘공’으로 대체되었지만 논리
 무(亦有亦無)’라는 제3구가 성립된다. 사과는 독립적 실체가   적 맥락은 동일하다. 천태는 원교사문을 통해 번뇌와 보리,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매끈한 과육이 만  중생과 부처와 같은 차별과 대립을 넘어 소통과 융합이라는
 져지고, 고운 빛깔이 보이고, 단맛이 느껴짐으로 사과는 ‘또  중도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그 과정은 아래와 같이 네 단계로
 한 있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하지만 아무리 눈앞에 사과가 있  구성된다.

 어도 무수한 조건으로 있을 뿐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또  첫째는 유문(有門)이다. 중생들은 견혹[見]과 사혹[思]로 대
 한 없다’라는 명제도 성립된다. 따라서 제3구는 있음과 없음  변되는 온갖 번뇌에 휩싸여 있지만 번뇌 자체가 거짓임 [假]을
 을 모두 긍정하는 긍정종합이다.  꿰뚫어보면 중생의 삶이 그대로 법계이며, 모든 것이 진리의
 반면 제4구는 있음과 없음을 모두 부정하는 부정종합이다.   성품[法性]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유문은 중생 그 자체를 긍
 사과는 무수한 존재들과 관계 속에 존재할 뿐 실체가 없음으  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로 ‘있지 않음(非有)’이 성립된다. 또 사과의 실체가 없다고 해  둘째는 공문(空門)이다. 중생들은 사바세계를 실제라고 생

 도 눈앞에 사과의 향기와 빛깔과 맛이 존재함으로 사과가 없  각하지만 그것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 실재하지 않는다. 따
 다는 명제 역시 부정됨으로 ‘없지 않음(非無)’도 성립된다. 따  라서 천차만별로 펼쳐진 중생세간과 그에 따른 모든 번뇌는
 라서 제4구는 있음과 없음이 모두 부정되는 ‘비유비무(非有非  실체가 없는 공이다. 유문에서 인정했던 중생세간을 부정하
 無)’가 된다. 3구와 4구는 대립하고 모순되는 두 명제를 모두   는 것이 공문이다.
 포함하기 때문에 ‘구시구비 (具是具非)’라고 한다. 옳음과 그름  셋째는 역공역유문(亦空亦有門)이다. 마치 하나의 대지에서
 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태는 이를 ‘쌍조쌍비 (雙照  수많은 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이 법계에는 번뇌도 있고, 불
 雙非)’라고 했다. 비춤과 부정이 동시에 있다는 것이다.  성도 모두 있다. 중생의 번뇌도 인정하고, 깨달음과 법성도 모

          두 인정하는 긍정종합이 역공역유문이다.
 ● 원교사문과 네 가지 관점  넷째는 비유비무문(非有非無門)이다. 법성은 불가사의하여
 이상과 같은 사구분별은 세친 보살의 논서 『구사론』에 등  세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간을 떠난 곳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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