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6년 10월호 Vol.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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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필요가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보살은 중생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이다. 십이연기를 이와

         을 부처님과 같이 존중하며 중생을 향한 연민과 자비의 실천                                      같이 중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마치 비로자나불과 같이
         에 몰두한다. 연기를 이렇게 이해하면 칠보로 장식된 보석의                                      어떤 자리도 집착하지 않고 허공을 자리로 삼는다[虛空爲坐]
         자리 [七寶座]에 앉게 된다고 했다.                                                  고 했다.
           그러나 천태는 이런 이해와 실천도 궁극적 경지는 아니라                                        연기법은 분명 불교의 핵심 교설이지만 그것만을 금지옥엽
         고 했다. 보살승의 관점과 실천은 비록 노사나불이 앉는 칠                                      으로 잡고 있으면 오히려 독단이 되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감

         보좌에 앉는 높은 경지는 맞지만 그와 같은 이타적 실천만으                                      옥이 된다. 그런 독단을 깨기 위해 『금강경』에서는 ‘정해진 법
         로 광명이 두루 빛나는 ‘광명변조(光明遍照)’는 될 수 없다는                                    은 없다[無有定法]’라는 공의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것이다. 나아가 그런 실천은 자신이 살아 실천하는 시공에만                                      어디까지나 법에 대한 집착을 치료하는 약일뿐이므로 공도

         자비가 머물기 때문에 언제나 법계에 머무는 ‘상주법계 (常住法                                    집착할 것은 못된다. 또 어떤 이는 이론도 필요 없고, 공도 필
         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 없고 중생을 향한 자비의 실천만이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넷째, 원교(圓敎)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원교란 부처                                   바른 지혜에 근거하지 않은 실천은 결코 오래 갈 수도 없고,
         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가장 완전한 가르침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연기법을 이해하는 가장
         을 의미한다. 원교의 관점에서는 십이인연을 생사의 관점, 모                                     수승한 태도는 교리도 중요하고, 법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태

         든 것이 공하다는 관점, 오로지 중생을 위한 실천만이 옳다                                      도도 중요하고, 자비의 실천도 중요함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는 세 가지 관점을 모두 넘어서서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이                                     실천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해하는 것이다. 때로는 무명을 밝히기 위해 수행에 몰두하는

         것이 옳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 존재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
         기 위해 모든 것이 공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옳기도 하다. 나
         아가 형이상학적 담론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고통 받는 중
         생 속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 옳기
         도 하다.
                                                                               서재영    ●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
           중도의 관점은 한편으로는 어느 것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
         확정하여 고집하지도 않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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