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16년 11월호 Vol. 43
P. 42

미로 설명하고 있는데, 핵심 요지는 ‘쉼’과 ‘머무름’이다. 첫째                                    ● 존재의 실상으로서 지관

         ‘쉼 [息]’이란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갖가지 망념을 고요히 쉬                                     그런데 천태학에서 지관은 단지 질주를 멈추는 수행덕목
         는 것이다. 질주하는 삶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기에 멈추는                                      에만 국한되지 않고 존재의 실상을 설명하는 존재론이자 세
         것이 수행의 관건이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계관이기도 하다. 천태지의는 『마하지관』에서 “법의 자성이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와 같은 목표를 향해                                    항상 적멸한 것이 지의 뜻이고[法性常寂卽止義], 적멸하면서도
         분주하게 질주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를 질주하게 한 그 무엇                                     항상 비추는 것이 관의 뜻[寂而常照卽觀義]”이라고 했다.

         이 나의 선택이 아니거나 잘못된 꿈이라면 아무리 빠르게 질                                        여기서 ‘지 (止)’ 언제나 고요한 존재의 성품이 된다. 존재의
         주해도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맥락에서 ‘멈춤’은 우                                    본성은 고요하지만 무한한 광명을 항상 비추고 있는 것이 관
         리가 바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자 성찰                                       (觀)이다.

         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지가 존재의 본성이라면 관은 존재의 작용이라
           둘째 ‘머무름[停]’이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질주하는 것                                    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천태지의는 “이치의 성품이 항상 적멸
         이 아니라 고요함 속에 평화롭게 정착하는 것이다. 욕망을                                       한 것 [理性常寂]을 지(止)라고 하며, 적멸하면서도 항상 비추
         향해 질주하는 마음을 멈추게 하려면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                                       어 [寂而常照] 방편이기도 하고 실상이기도 한 것[亦權亦實]을
         이 실체 없는 공(空)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모든 존재가 실체                                   관(觀)이라 한다.”고 했다. 지가 맹목적 질주를 막고[遮] 제법

         없는 공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을 할                                       의 본성을 성찰하는 것이라면, 관은 고요하면서도 언제나 비
         때 일시적 멈춤이 아니라 고요와 평화의 세계에 정착할 수                                       춤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존재의 실상은 항상 고
         있다.                                                                   요하면서도 법성은 언제나 찬란히 빛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관(觀)’에 대해서도 『마하지관』은 세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모든 존재의 실상은 언제나 고요함 즉 ‘상적 (常寂)’이지만 아
         있는데, 요지는 ‘꿰뚫다’와 ‘통달하다’로 압축된다. 첫째 ‘꿰뚫                                  무 작용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상
         다[貫穿]’의 의미는 날카로운 지혜로 모든 번뇌를 꿰뚫고 존재                                    조(常照)’이기도 하다.
         의 실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둘째 ‘통달하다[觀達]’의 의미는                                     고요한 본성으로서의 적 (寂)과 항상 비추는 작용으로서의
         모든 존재의 성품을 바르게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는 것이다.                                      조(照)를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하나의 법(法) 즉 존재를 관

         이렇게 지관은 질주의 멈춤이라는 정 (定)과 실상의 관조라는                                     찰해 보면 된다. ‘항상 비춤[常寂]’이란 드러나지 않고 관계 속
         혜 (慧)로 이루어져 있다.                                                       에 숨어 있는 연기적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송



         40                                               고경                   2016. 11.                                          41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