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16년 11월호 Vol.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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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화는 저 혼자 핀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봄부터 내린   “지는 체진이니 [止卽體眞] 비추면서도 항상 적멸하고[照而

 빗물도 깃들어 있고, 따사로운 햇살도 스며 있고, 바람과 허  常寂], 지는 수연이니[止卽隨緣] 적멸하면서도 항상 비추
 공을 떠가는 구름도 배어 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한   고[寂而常照], 지는 그치지 않는 지이니[止卽不止止] 쌍차
 송이 국화에는 단지 꽃만 보일 뿐 그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  하며 쌍조한다[雙遮雙照]. 지는 부처의 어머니이고[止卽佛
 는다. 그와 같은 수많은 조건들이 국화를 피우게 했지만 그것  母], 지는 부처의 아버지이며[止卽佛父], 또한 아버지이고
 들은 소리 없는 침묵이 되어 조용히 있을 뿐이다. 이렇게 고  어머니이다. 지는 부처의 스승이고 부처 자신이다.”

 요한 침묵에 싸여 있는 존재의 본성을 ‘항상 고요함’ 즉 상적
 (常寂)이라고 한다.  첫째 체진지에서 ‘지 (止)’란 고요함이고, 그 고요함이 곧 ‘참
 하지만 그 고요한 침묵들 즉, 봄부터 내린 빗물, 따스하게   다움[眞]’이라고 했다. 한 송이 국화는 눈앞에 있지만 국화라

 스며든 햇살, 토양 속의 수많은 미생물들이 소리 없는 침묵이  는 개별적 실체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국화의 실체를 추구해
 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조건들이 있어 한 송이 국화는   들어가면 국화는 아무런 실체도 없는 공(空)이다. 국화는 수
 필 수 있었다. 따라서 국화라는 개별 존재의 이면에는 수많은   많은 조건들이 동참하여 만들어낸 연기적 산물이기 때문이
 존재들이 작용하고 있다. 고요하지만 하나의 존재를 있게 하  다. 하지만 그 수많은 조건들은 국화를 피워내고도 자기들이
 는 연기적 작용이 바로 ‘항상 빛남’ 즉 상조(常照)가 된다. 이렇  국화를 피웠다고 자랑하지 않고 침묵 속에 숨어 있다. 이것이

 게 모든 존재는 본성의 관점에서 보면 개별적 존재만 드러나  ‘비추되 항상 고요함[照而常寂]’이라는 존재의 연기적 본성이
 고, 무수한 조건들은 침묵 속에 있다. 하지만 작용의 관점에서   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무수한 조건들로 인해 존재하며 개체
 보면 무수한 조건들은 침묵 속에서 개별 존재를 있게 한다.   적 실체가 없음이 진공(眞空), 즉 ‘완전한 공’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이와 같으므로 온 세상은 ‘항상 고요한   둘째 수연지에서 ‘수연 (隨緣)’이란 고정불변의 실체로 머물
 빛의 국토’ 즉, 상적광토(常寂光土)가 된다. 상적광토는 고요히   지 않고 무수한 조건을 따라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한 송이
 침묵하고 있는 ‘차(遮)’와 그 침묵하는 존재들이 하나의 대상  국화의 개별적 실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텅 빈 공이다. 국화
 으로 드러나는 ‘조(照)’로 직조되어 있다. 이처럼 지관은 수행  를 피워낸 것은 빗물과 봄 햇살과 토양의 자양분이라는 무수
 론에 그치지 않고 불교의 핵심적 교리인 연기와 중도를 설명  한 조건이다. 그들 조건들은 국화 뒤에 숨어 있다. 하지만 그

 하는 교리로 확장된다. 이는 『마하지관』에서 설명하는 세 가  들이 국화를 피어나게 했으니 이것이 ‘고요하되 항상 비춤[寂
 지 지의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而常照]’이다. 하나의 개체를 있게 한 무수한 조건들은 고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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