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고경 - 2017년 1월호 Vol.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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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해 오셔서 대중들에게 나누어 준 뒤 법문을 하셨어요.                                                                    가 눈을 뜨면 대중의 3

           얘기한대로 불교의 정의는 물론이고 과학에 대한 말씀도                                                                      분의 1은 앉아서 정진을
         많이 하셨어요. 등가원리 (E=mc )를 그렇게 쉽게 설명하시던 모                                                                하고 있어요. 깜작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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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큰스님께서는 설명을 하실 때 항                                                                     같이 정진했던 기억이
         상 근거를 들어 말씀하셨어요. 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처럼 무                                                                    납니다.
         슨 책 몇 페이지에 보면 나와 있다고 근거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때는 또 점심공양을

           저는 그 당시 ‘명등(明燈)’ 소임을 했습니다. 전기가 없을 때                                                                마치고는 큰방에 다 모
         라 선원 전각마다 불을 켜고 끄는 일을 했습니다. 고생스러웠                                                                    여서 같이 차담을 했습
         지만 대중들과 함께 신심이 나서 법문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

         부처님법이나 조사스님법이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안                                                                     절이어서 우유를 한 잔
         목이 부족한 것일 뿐입니다.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주신                                                                      씩 타서 대중들이 돌려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정진해야겠습니다.                                                                           먹기도 했습니다. 방장스
                                                                                                              님이하 수좌, 유나, 율주
                                                                               한국불교를 이끌었던 성철 스님과 혜암 스님
         성철 큰스님의 ‘백일법문’도 그렇지만,                                                                                스님까지 같이 오셔서

         당시 가야산의 정진열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      예전에는 해인사의 선방이 3개였습니다. 조사전은 용                                     힘들었어도 그때는 정진 분위기도 좋고 대중들이 한 방에
         맹정진, 퇴설당은 가행정진, 선열당은 일반정진실이었습니다.                                      서 같이 잘 지냈습니다. 지금은 예전의 그 맛이 좀 적은 것 같

         성철 큰스님께서 경책을 하실 때면 조사전에서부터 큰 소리                                       아요.
         가 들립니다. 죽비로 사정없이 경책을 하실 때였으니까요. 성
         철 큰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제대로 정진 안 하면 ‘밥도둑놈들                                      당시 정진 열기와 현재 가야산의 분위기가
         이 잠만 잔다’고 호되게 경책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퇴설당과                                     조금 차이가 있을까요?
         선열당의 대중들은 더 긴장해서 자세를 다잡곤 했습니다.                                        ●      말씀드린 대로 예전에는, 부족하지만 뭔가 열심히 정

           당시는 대중이 많아 방이 부족했습니다. 노장님들도 큰방                                      진하자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많이 계셨고요. 그
         에서 같이 생활했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자야 했습니다. 자다                                     런데 지금은 세대가 달라서인지 문화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 고경                                           2017. 01.                                                                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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