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7년 1월호 Vol.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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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필자는 대학원의 석사과정에서 위의 두 가지 번뇌에 대한
설명을 처음 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저 두 가지에 대
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무참’이란 스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지도
로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린 상태이고, ‘무괴’란 못한 지혜가 드러난다
타인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 상태로서, 사
람이 나쁜 짓을 저지를 때를 보면 항상 이 두 가지 마음이 결
글 : 장웅연
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자신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든
다면, 그것은 아직은 크게 나쁜 상태로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 아닌 옛 선사(禪師)들은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보여
지에 대해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줄 뿐이었다. ‘깨달음은 생각 이전에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이 바로 저 두 가지 번뇌가 생기는가, 생기지 않는가에 달려 보여준 방편이 바로 선문답이다. 도(道)는 ‘뜰 앞의 잣나무’라
있으므로, 이 두 가지만 잘 이해해도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 거나 ‘똥 막대기’라는 말을 들으면 부지런히 굴러가던 머리에
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번뇌들에 대해서도 곰곰이 한번 제동이 걸린다. 뚱딴지같은 대답은, 도(道)라는 게 고귀하고 오
씩 되새겨 본다면, 자신의 마음이 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묘한 무엇일 거라는 선입견에 내리치는 일종의 방망이다.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화근이다. 생각하는 ‘나’와 생각되는 ‘너’, 생각대로
되어야 하는 ‘나’와 생각대로 움직여줘야 하는 ‘너’…. 온갖 탐
욕과 분별과 증오의 유래다. 생각이 이기심을 낳고 생각이 살
인을 낳는다. 결국 무념 (無念)은 평화에 다가가는 가장 단순하
박인석 _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 고 간명한 길이다. 가르고 비교하고 질투하는 분별심만 없다
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
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면 행복은 보장된다.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고 마음을 진득하
● 고경 2017. 01.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