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7년 1월호 Vol.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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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러나 그때 나는 보건복지부나 청와대에 항의 글 한 편도 올리

          지 않았다. 그래도 2백 넘게 환급을 받지 않았느냐, 이런 제도
 물에 빠진 개는   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면서 정신승리로 어려움을

 때려야 한다   극복해내는 阿Q가 되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밝히는 시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화여대 학생들이다. ‘내 돈 왜 뺏어 가냐’
 글 : 이인혜
          로 화가 났던 나처럼, 이들도 ‘내 학점 왜 뺏어 가냐’에서 시작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신승리로 얼버무리지 않고 끝까지 싸
          워서 다른 결말을 이끌어냈다. 총장을 쫓아내고 부당함을 언

          론에 알림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매일같
 요즘 청와대 관련 소식은 나의 상식과 상상력이 미치는 범  이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어떻게
 위를 넘어서 있다. 약에 의지한 육신, 미신에 점령당한 정신.   망하지 않을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렇게 나서서
 어쩌다가 우리는 ‘혼이 비정상’인 그 사람에게 4년이나 국정을   행동하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귀찮음을
 맡겼는지, 개돼지의 한 마리로서 짖을 기운도 없다. 그저 언론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11월 언제부턴가 자의반타의반으로 촛

 에서 들려주는 뉴스를 얻어듣고 역겨움을 소화하느라 애쓰는   불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중이다. 나도 프로포 뭐라나 하는 주사를 맞고 일곱 시간쯤   별 생각 없이 친구 따라 나가서 촛불과 함성의 장관 속에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압도되어 있노라니, 어쩌다가 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阿Q가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난 대선에서는 2  된 느낌이다. 그래도 친구가 마련해준 꺼지지 않는 LED촛불
 번에게 표를 주었다. 2번 후보의 공약 중에 의료비 환급금을   을 치켜들고 ‘물러나라’ ‘구속하라’를 열심히 따라한다. 백만이
 1년에 3백만 원 더 주겠다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3백이   넘는 촛불이 파도를 타는 광경은 『법화경』 첫머리에 부처님이
 아니라 백만 원만 올려준다 해도 크게 보탬이 될 거라는 기대  광명을 놓아 천지를 비추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 목소리로
 를 품고 투표를 했으나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당선된   외치는 구호는 시방 부처님이 이구동음으로 증명하는 소리를

 그녀는 되레 환급금을 백만 원이나 깎았다. 돈 백만 원을 내   연상케 한다.
 동의도 없이 뺏어간 그녀를 처음부터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이렇게 민심을 보여준 결과로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안을



 ● 고경  2017. 01.                                            56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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