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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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사의에서는 공의 개념을 공 자체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반대 개념인 ‘색 (色)’을 말한다. 흔히 공이라고 하면 아무 것도

 공의 반대개념인 색 (色)과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한다. 무엇이   없는 ‘텅 빔’으로 이해하지만 공의 첫 번째 의미는 공은 숨고
 비었다[空]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당연히 무엇이 있다[有]는 개  색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장은 색과 공의 관계를 통  모든 존재는 허공처럼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해 진공의 네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물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감각의 대상으로 인지되는 대
          상은 공이 아니라 ‘색 (色)’이라는 사물들이다. 하지만 그 색의

 “진공에 전체적으로 네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를   본질을 깊이 궁구해 보면 모든 개체는 실체가 없는 공이다. 따
 버리고 남을 이루는 뜻이니 (廢己成他義), 공이 그대로 색이  라서 우리가 보는 공의 첫째 모습은 ‘텅 빔’이 아니라 색이라
 기 때문이다. 즉 색은 드러나고 공은 숨는 것 (色現空隱)이  는 무수한 존재들이다.

 다. 두 번째는 남을 버리고 자기를 드러내는 뜻(泯他顯己義)  공은 색의 그늘 밑으로 ‘자신을 숨김 [廢己]’으로써 자신을
 이니, 색이 공이기 때문이다. 즉 색이 다하고 공이 드러나  드러낸다. 만약 공이 뒤로 숨지 않고 전면으로 드러난다면 눈
 는 것 (色盡空顯)이다. 세 번째는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하는   앞에 있는 모든 사물들은 사라지게 된다. 공이 전면으로 드러
 뜻(自他俱存義)이니, 숨는 것과 드러남이 둘 아닌 것(隱顯無  나는 순간 그 ‘텅 빔’이라는 속성 때문에 공조차도 존재할 수
 二)이 진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색이 공과 다르지 않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은 색을 전면에 드러내고 자신

 것 (色不異空)을 환색(幻色)이라 하니 색이 존재하고, 공이 색  은 뒤로 숨는 것이다[色現空隱].
 과 다르지 않은 것 (空不異色)을 진공(眞空)이라 하니 공이 드  공이 뒤로 숨는 이유는 사물[色]이 없으면 공도 있을 수 없
 러난다. 서로 장애하지 않아 둘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 때문이다. 공은 색으로 표현되는 존재들에 의지해 자기 자

 네 번째는 자기와 남이 함께 없어지는 뜻(自他俱泯義)이니,   신을 드러낸다. 이런 원리를 화엄의 십현문에서는 ‘탁사현법
 전체가 상즉하여 완전히 빼앗아 색·공 둘을 없애서 양변을   (託事顯法)’이라고 설명한다. 사물에 의탁해서 공이라는 존재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의 실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한 송이의 꽃, 한 그루의 나무, 하나의 생명
 자신을 숨기고 남을 드러내다  체들이다. 그 모든 존재의 본질을 궁구해 들어가면 개체의 본

 진공의 첫 번째 의미는 ‘자기를 버리고 남을 이룸[廢己成他]’  성은 공하다. 비록 공이 전면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모든 사물
 이다. 여기서 ‘자기 [己]’란 ‘공(空)’을 의미하고, ‘남[他]’이란 공의   의 근저에는 공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눈앞에 색이라는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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