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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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 있지만 그 본질은 공하기 때문에 색을 보는 것이 곧 공  색이 없으면 관계의 사슬이 해체되고, 관계의 사슬이 해체되

 을 보는 것이 된다[色卽是空]. 이처럼 공을 아무 것도 없는 ‘텅   면 공도 존재할 수 없다. 공은 연기라는 관계의 사슬이기 때
 빔’으로만 이해하면 공을 왜곡하는 것이다.  문이다.
            이렇게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파고들면 눈앞에 실재하는
 남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다  것처럼 보이던 국화라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법장은 ‘색이 다

 진공의 두 번째 의미는 ‘남을 버리고 자기를 드러냄[泯他顯  하면 공이 드러난다[色盡空顯]’고 했다. 색이라는 존재를 하나
 己]’이다. 여기서 ‘남’은 ‘색’을 의미하고, 자신은 ‘공’을 의미한  하나 파고 들어가면 색이라는 개체적 실체는 없고 관계적 맥
 다.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존재의 세계,   락만 남는 것이다. 여기서 ‘민타(泯他)’라는 공의 두 번째 의미
 즉 색의 세계이다. 우리는 눈앞에 드러난 색에 현혹되어 세상  가 저절로 드러난다. 눈앞에 존재하는 색이 해체될 때 비로소

 에는 색이라는 유(有)만 있고 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의 실상인 공이 전면으로 드러난다. 공은 이와 같이 개체
 눈앞에 있는 색의 실체를 탐구해 들어가면 색의 실체는 존재  적 존재의 해체를 통해 ‘현기 (顯己)’, 즉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 않는다.    색을 숨기고 공이 전면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새로운 공이
 한 송이 국화꽃은 눈으로 보면 꽃이라는 독자적 개체가 있  나타난 것은 아니다. 색은 공의 현상이고, 공은 색의 본질이라
 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화의 실체를 파고들어 가면 국화  고 할 수 있다. 현상과 본질은 둘이 아니므로 현상이 곧 본질

 라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국화는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이고, 본질이 곧 현상이다. 공이든 색이든 그 둘의 관계는 ‘색
 봄비의 습기 때문에 싹을 틔웠고, 뿌리를 타고 오르는 수분에   이 그대로 공[色卽是空]’이며,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이라는
 의지해서 생기를 얻고, 무수한 미생물과 박테리아들이 공급  관계가 된다. 따라서 ‘참다운 공[眞空]’은 아무 것도 없는 절대

 하는 자양분에 의지해서 성장하고, 따사로운 태양의 에너지  무가 아니라 색이라는 자기 부정성을 포함하고 있고, 반대로
 에 의지해 꽃을 피우고, 무수한 벌 나비들에 의해 열매를 맺  색의 본질인 ‘진색 (眞色)’도 눈앞에 드러난 현상이 전부가 아니
 는다.      라 색의 부재라는 자기부정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한 송이 국화꽃은 작게는 미생물의 활동에서 크게는
 우주적 질서에 의지해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의 산물  나와 남이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사라지다

 이다. 국화의 실체는 없다는 개체의 공성 (空性)을 통해 비로  진공의 세 번째 의미는 ‘자기 자신과 남이 함께 머묾[自他俱
 소 하나의 존재는 우주적 관계로 확장된다. 따라서 국화라는   存]’이다. 공의 첫 번째 의미는 공은 숨고 색이 전면에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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