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고경 - 2017년 2월호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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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전체의 대강을 말하겠습니다.”고 서두를 시작하시며 60분   에 힘들게 쓴 듯한 한글 이름도 적혀 있었습니다.

 동안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서너 번 봉암사 결  몇 가지 자료를 더 모으면서 ‘불면석’ 난에 큰스님께서 약
 사에 대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그  속하셨지만 다하지 못한 봉암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른스
 날 법문 한 번으로 봉암사 이야기는 끝나고 더 이상 법상에서   님들을 우선 찾아뵙기로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봉암사 결
 하시는 법문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사운동이 조계종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성철 큰스님의
 1993년 11월에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구술 법문과 <고경>의 ‘불면석’ 난에 실린 큰스님들의 말씀이

 그런 가운데 큰스님 사리탑 건립 불사가 진행되면서 모연  그 역사 자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 동참해준 시주자님들께 상황을 알려드리고자 <고경 (古鏡)>  무엇보다 감사하고 고마웠던 분은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
 이라는 계간지 잡지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계간지를 만든다  학장 묘엄 큰스님이었습니다. 봉녕사로 찾아뵈었을 때 그렇게

 고 하였지만 잡지를 한 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반가워하시면서 “큰스님 떠나신 후에 뒷일을 감당하느라 수
 실감했습니다. <고경>에 백련암 앞마당에 서 있는 불면석 (佛面  고가 많다.”고 거듭거듭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때까
 石)의 이름을 따서 인터뷰 꼭지를 만들었습니다. 성철 큰스님  지 고이고이 간직해 오셨던, 성철 큰스님께서 처음이자 마지
 과 인연 있는 큰스님들을 찾아뵙는 기획입니다.    막으로 손수 만들어 주셨다는 유일한 사미니 계첩본과 단군
 평소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며 드나드시던, 저희들에게는 제  조선부터 8·15해방까지 시대별로 간략하지만 8절 크기의 옛

 대로 한번도 보여주시거나 설명해 주신 적이 없는 큰스님의   날 시험지에 주요 사건을 적어 가르쳤던 국사 강의표 등 숨 막
 ‘장경각’ 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습니다. 책들은 문이 달린 찬
 장처럼 된 궤짝 속에 있고 밑에 서랍이 달린 문을 열어 보니

 전지에 적힌 ‘佛’자 몇 장과 반절짜리 ‘佛’자 몇 장과 다른 붓
 글씨 몇 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묵
 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가는 속에 한 장 한 장 자
 세히 살펴보는데 봉암사 공주규약이 눈에 들어오고 두루마
 리의 긴 문종이가 발견되었는데 결사에 참석했던 각자의 이

 름과 본사를 1949년에 자필로 적었습니다. 제일 처음에 청담
 스님의 법명인 순호 스님이 적혀 있었고, 저 끝에는 어린 나이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



 ● 고경  2017. 0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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