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고경 - 2017년 3월호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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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잠만 퍼 자고 가자니 원택 스님께 누가 될까하여 마음이                                      놀아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

         편치 않았다.                                                               마 남편 승진이나 자녀 합격 등등에 간절할 것이라 마음대로
           갈등 때리는 채로 고행이 시작되었다. 인정사정없는 죽비소                                     짐작했다. 그리고는 그런 게 다 분별심을 쓰는 일이고 세속의
         리를 원망하며 삼천 수를 채우는 동안, “내가 미쳤지, 그냥 숙                                   욕심이나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
         박료 내고 마을에서 하룻밤 묵다 갈 걸.” 하는 후회가 제일                                     심을 가졌다.
         컸다. 천오백 배를 한꺼번에 하고 그 다음은 오백 배씩 끊어서                                      그러다가 지난 연말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

         일곱 시간쯤 걸려 끝이 났다. 몰골은 짐승이었지만 마음에선                                      라 무리하는 바람에 허리가 아팠다.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비
         환희의 송가가 들려왔다. 자신감이 상승하여 곧 철인삼종경                                       명이 나오며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며칠, 몸을 펴지
         기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해냈다’는 뿌듯함에                                    도 못하고 굽히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음걸음 통

         도취된 기분도 잠시, 곧이어 뭔가 빠졌다는 허전한 느낌이 들                                     증을 느끼며 가라앉길 바랐다. 그러나 돌아누울 때도 절로 신
         었다. 절하는 게 단순히 극기훈련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                                     음이 날 정도가 되자 겁이 덜컥 났다. 평생 아프지 않고 살아
         이 들자 기분이 급 이상해졌다. 뭐가 빠졌는지 알 수 없는 채                                    온 사람은 이 정도에 충분히 겁먹을 만하다. 꼼짝없이 이제
         다음 날 휘청거리는 다리로 암자를 내려왔고, 그 뒤로는 관심                                     는 병원 가서 찍어봐야겠다 하는 차에 절을 해보라는 권유를
         을 끊고 지냈다.                                                             받았다. 그동안 번번이 무시해왔었는데 이번에는 귀가 솔깃했

           주위에 절을 수행으로 삼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끔 권유를                                      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매우 기뻐하면서 방법을 자세
         받기도 했다. 그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간절함이 있었                                     히 알려주었다. 마스터급 절 수행자가 하는 이야기라 그런지,
         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무얼까, 진심일까, 진심이라면 항상 그                                   없던 믿음이 절로 생겨나서 아픔을 참고 시작했다. 무릎 꿇은

         마음이 유지될까 궁금했다. 내게는 잠깐 동안의 간절함은 있                                      영험은 바로 나타났다.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허리가 말끔히
         었어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                                      나은 것이다. 좋기는 매우 좋으나 자존심이 좀 상했다. 요리
         쓰고 몇몇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 친구는 하심을 위                                     빼고 조리 빼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피해왔는데, 허리
         해서 절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하심할 만큼 니가 잘났                                     ‘따위’로 무릎을 꿇다니 말이다.
         냐?”고 되물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또 한 친구는 애가                                      허리가 다 나았으니 이제 어쩐다. 그만 할까. 그만두기에는

         아파서라고 했다. 아프면 병원 가서 고치든지 고치지 못하면                                      어쩐지 아까운데, 계속 한다면 뭘 가지고 절을 하나. 절 마스
         보듬고 사는 수밖에 없는 일이지, 절하는 시간 아껴서 애랑                                      터에게 물어보니 계속 하란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하란다.



         ● 고경                                           2017. 03.                                                                58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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