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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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답변도 마찬가지다. 그대가 부처인데 어디서 부처를 찾느냐는
타박이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고, 생명은 어떤 식으로
쓰레기에게 인사를 든 살아낸다. 한심한 인생과 고귀한 인생이 따로 없다. 누구나
하고 있구나! 죽음 앞의 촛불이고 윤회 앞의 벌레들이다. 삶과 하나가 되
어 걷거나 견딜 뿐, 삶을 따로 떼어내어 손가락질하거나 닦달
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는 그대로가 진실이고 완성! 달마는
글 : 장웅연
지금 이 순간에도 막 오고 있다. 바람이 분다.
제84칙 — ●
구지의 한 손가락(俱胝一指, 구지일지)
달마는 처세(處世)에 대해서도 가르쳤는데 사행(四行)이라 구지 화상은 도를 물어오는 이를 만나면 다만 손가락 하나를 세
한다. △현실의 갖은 불행을 지난날의 업보로 여겨 달갑게 받 웠다.
아들이는 보원행 (報怨行) △그때그때의 인연과 조건에 순응하
는 수연행 (隨緣行) △아무 것도 기대하거나 아무 것에도 기대 구지(俱胝) 선사와 관련해 엽기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지 않는 무소구행 (無所求行) △보원행과 수연행과 무소구행을 그는 누가 도(道)를 물을 때마다 말없이 검지를 치켜세웠다.
견지함으로써 청정한 본성을 훼손하지 않는 칭법행 (稱法行)을 그래서 이름이 구지다. 동자승 하나가 스님을 흉내 내고 다녔
합쳤다. 그야말로 진리라 칭해도 거짓되거나 민망하지 않은 다. 어린 생불(生佛)이 났다는 소문에 온 동네가 떠들썩해졌
삶이다. 그것은 인내와 달관이 만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 다. 선사가 조용히 동자승을 불렀다. “어떤 것이 불법 (佛法)인
이 동요하지 않는다면 부처란다. 움직이지 않고 휘둘리지 않 고?” 동자승은 우쭐대면서 늘 하던 대로 손가락을 올렸다. 순
는 마음이 무심이다.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을 ‘마음대 간 스님은 품에 숨겼던 칼을 꺼내 아이의 손가락을 순식간에
로’ 다룰 줄 안다면. 잘라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동자승을 스님이 불러
부처님을 믿게 하려고 동쪽으로 왔다면 달마는 그냥 포교 세웠다. “어떤 것이 불법인고?”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세웠지
사다. ‘조사서래의 (祖師西來意)’에 대한 선사들의 뚱딴지같은 만 손가락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크게 깨쳤다.
● 고경 2017. 05. 48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