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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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심각한 아동학대다. 당장에 철창 신세였을 것 국사가 열반에 든 뒤 황제가 탐원응진(眈源應眞)을 불러 물었다.
이다. 대문짝만한 뉴스에 깔려 죽었을 수도 있다. 폭행치상 현 “스승의 뜻이 무엇이오?”라고 물으니
행범으로 체포된다 해도 구지 선사의 입장에선 할 말이 없다. “소상(蕭湘)의 남쪽과 담수(潭水)의 북쪽 복판에 황금이 있는데
그러나 “크게 깨쳤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전제하면, 동자승에 한 나라에 꽉 찼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한 배에 탔고, 유
겐 이보다 더한 은혜도 없을 것이다. ‘애당초 아무 것도 없음 리 대궐 위에 아는 이 없어라.”
(本來無一物)’을 알아버렸는데, 손가락 하나 잃은 게 무에 대수
일까. 아이의 일생은 앞으로 창창할 것이다. ‘여하튼 태어났으 ‘3층 석탑’ ‘5층 석탑’ 하듯이 일반적인 탑에는 층급(層級)
니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엄청난 성공가도. 이 있게 마련이다. 무봉탑은 탑의 몸체가 달걀 모양인 탑이다.
동글동글하고 반질반질하다. 꿰맨 흔적이 없기에, 무언가가
제85칙 — ● 머물다가 간 자취가 없기에 ‘무봉’이라 한다. 주로 선승(禪僧)
국사의 탑 모양(國師塔樣, 국사탑양) 의 묘지에 쓰인다. 무봉탑의 양식은 이때만 해도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봉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황제는 자꾸 물
숙종(肅宗) 황제가 임종에 든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무엇을 해드리리까?”
남양이 말했다.
“나를 위해 무봉탑(無縫塔)을 세워주시오.”
황제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탑의 본을 보여주십시오.”
이에 국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나의 법을 부촉한 탐원이라는 제자가 있는데, 그 일을 알 것이
니 그에게 물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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