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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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제자인 탐원응진이 스승의 속내를 대신 전해주었다. ‘소                                      “제가 불법의 대의를 세 차례나 물었는데 대답은 없고 방망이

         상’과 ‘담수’는 강물이다. 남쪽의 강물과 북쪽의 강물이 유유                                      만 세 번 맞았습니다.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히 흐르듯이 불교의 진리는 어디에나 임하고 있다는 탐원의                                         요.”
         ‘대리설법’이 무봉탑의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우는 크게 꾸짖었다.
           천하 전체가 무봉탑이다. 제아무리 떠들썩하게 왔다손 결                                        “황벽이 자네를 위하여 그토록 노파심에 세심하게 가르쳐주었
         국엔 조용히 돌아간다. 제아무리 거대하고 웅장한 비석이라                                         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느냐!”

         손 비석의 주인공을 이 세상에 되돌려놓지 못한다. 호랑이는                                        임제가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시체를 남긴다. 이름을
         남긴다고? 장례 치르느라 남은 사람들만 고생한다. 과거의 선                                       남에게 맞으면 몸이 아프고 이어 마음이 아프다. 분하고 억

         사들은 유언이 대동소이하다. 빈소를 차리지 말 것, 다음날                                      울하고 원망스럽고 창피하다. 그래도 통증이 잦아들면 마음
         낮에 곧바로 화장할 것, 절대 울지 말 것. 쓰레기 앞에서 인사                                   도 가라앉는다. 물론 통증은 이미 자취를 감췄는데 여전히
         하거나 쓰레기를 치우는 데 머뭇거리거나 쓰레기를 치우면서                                       마음을 붙잡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수행이란
         우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생각하지 않는 연습이다. 야무지게 꿀밤을 맞으면 머릿속에
                                                                               별이 뜬다. 수치심과 적개심 없이 그 별의 아름다움만을 즐기

           제86칙 — ●                                                            고 싶다.
           임제의 큰 깨달음(臨濟大悟, 임제대오)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황벽희운(黃檗希運)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황벽이 때렸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하고는 임제는 황벽을 떠나
           고안대우(高安大愚)에게로 갔다. 대우가 물었다.                                          장웅연    _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
                                                                               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
           “어디서 왔는가?”
                                                                               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
           “황벽에게서 왔습니다.”                                                       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
           “황벽이 무슨 말을 하던가?”                                                    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 고경                                           2017. 05.                                                                5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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