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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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는 구경꾼에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완전히 타자가   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되었다. 처음의 충격은 점점 무뎌지고, 그들의 고통은 이제 리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
 모콘을 돌리다가 잠시 멈춰서 보는 정도의 구경거리가 된 것  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이다. 저자는 그렇게 무뎌지는 이유가 무력감과 두려움 때문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이며,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 하나의 이유라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
 한다.          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
              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
 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  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이런 감정으로, 서로 연락
 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수잔 손택은 미국 사람이다. 그녀는 수많은 학살 위에 세워
 만약 ‘우리’ (그런데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가   진 나라가 미국임을 인정하고, 초강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  질러온 악행이 많은데도 미국인들은 그런 역사를 되돌아볼
 들’ (그런데 ‘그들’은 또 누구인가?)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  줄 모른다고 용감하게 말한다. 2001년 9·11테러가 났을 때
 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  그녀는 “미국이 저지른 특정 행위에 따른 당연한 귀결” (「뉴요

 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커」2001, 9, 24)이라는, 미국인으로서는 드문 발언을 했다. 하나
          의 사건을 놓고 인과관계를 따져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세이
 연민은 사람의 본능이자 보살이 될 기질이기도 하다. 그러  다. 그런 성찰을 통해 그녀는 9·11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
 나 고통을 받는 자가 ‘그들’이고 연민을 느끼는 자가 ‘우리’인   을 남겼다.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연민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말자.”
 한계를 넘어설 과제를 제안한다.
            나는 세월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는 다 같이 슬퍼했지만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않았기 때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연민에 주저앉
 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  지는 않았다. 안전 대신에 돈을 선택해온 삶을 돌아보고 시민



 ● 고경  2017. 05.                                            56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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