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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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내 마음은 “아, 저 아이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그랬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하는 부모들을 보면서도 “아, 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우리의 자세   그랬다.
            구조를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동안
          은 숨은 뉴스들을 찾아보았다. 유투브나 팟케스트를 통해 유
 글 : 이인혜  가족, 생존자, 잠수부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보고 들으면서
          화가 치밀었다. 가만있을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겠기에 서명
          을 하고 시위에도 나갔다. 그러나 진상규명은커녕, 오히려 유

          가족들이 모욕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한편으로는 분노가
          심해지고 한편으로는 무력감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마음이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침몰한 지 3년 만에, 말할 수   불편해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않고 외면하다가 바쁜 일상
 없는 곡절을 담고 처참한 모습이 되어 올라온 배를 보자 그날  에 묻혀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음에도
 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은, 왜 그런  불구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지는 몰라도, 그날 일어났던 일과 함께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일이 없다. 연민으로 시작해서 무관심으로 끝남. 이것이 남에

 도 뚜렷이 기억난다. 어릴 때 무장공비가 서울에 침투했던 날,   게 닥친 고통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동네 위로 저공비행하던 헬리콥터의 굉음과 함께, 내 손을 꼭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후, 2004)에서 우리에게 연민
 쥔 외할머니의 치마 색깔까지도 기억이 난다. 2009년 5월 23  을 넘어선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녀는 1990년대 보스니아
 일, TV화면 가득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글자가 뜨고, 이  전쟁이 한창일 때 그 속에 살았다. 보스니아에 가해진 세르비
 어서 영화의 엔딩타이틀처럼 천천히 올라가는 글자들. ‘님은   아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이 국제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생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시.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님의 침묵’으  히 전해졌고, 저자의 표현대로 ‘스펙터클’한 그 장면들은 사람
 로 남았다.   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TV를 통해 중계방송을 보았던 사람들

 그리고 3년 전 4월 16일, 하루 종일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은 저런 끔찍한 일들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
 없었다. 저녁에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그 식당  께, 내게 일어난다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와 저 사람들 어떡해
 에서 밥 먹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말없이 뉴스만 보고 있었  라는 연민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 고경  2017. 05.                                            54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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