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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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암 생활은 어떠셨어요? 습니다. 경전은 물론이고 영어책도 많았습니다. <타임> 잡지도
● 제가 성전암에 간 것이 1963년 말입니다. 엄청 추웠 있었고요. 영어책을 보면서 ‘도사님도 영어를 공부하시나?’는
어요. 숨 돌릴 틈 없이 진행되는 하루 일정에 어찌나 피곤하던 생각도 했었습니다. 성전암에서 김용사로 가실 때 트럭 2대를
지 새벽예불만 마치면 잠이 쏟아졌어요. 한번은 높이 쌓아 놓 불러 책을 가져갔습니다.
은 볏단에 들어가 잠을 잤어요. 날이 추우니 아마 본능적으
로 그렇게 움직인 것 같아요. 눈을 떠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 공부에 대해 성철 스님이 따로 말씀하신 것이 있었나요?
었습니다. 그때 대중들이 저를 찾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 ●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감히 법을 묻고 가
습니다. 르침을 달라는 말씀을 올린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습
니다. 저는 큰스님을 ‘도사’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단순한 어떤
성철 스님을 모시면서 많은 일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했어요.
● 큰스님께 엄청 많이 혼났던 기억뿐입니다. 하하. 음식 큰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항상 ‘공부 안 하면 살아도 죽은
물 찌꺼기가 수채 구멍에 남아 있으면 한 겨울에 그것을 깨서 송장과 다름없다’며 정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다시 솥에 넣어 끓여 먹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시주 공양물 사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저는 그냥 절만 열심
을 낭비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거든요. 히 했던 기억입니다. 하하.
성전암에 있는 내내 나무하고 청소하고 밥 짓고 저녁때면
다 같이 선방에 앉았던 기억뿐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칭찬을
하실 때도 삼천배, 혼을 내실 때도 삼천배를 하라고 하셨어
요. 덕분에 절을 원 없이 했습니다. 하하.
성전암에서는 저를 포함 3~4명이 큰스님을 시봉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김용사로 가서 큰스님께 ‘만연’이라는 법명을 받
기도 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당신 방에서 주로 참선을 하셨습니다. 제 생
각에는 정진을 하시다가 의문점이 생기면 책을 보신 게 아닌
가 싶습니다. 알려져 있듯이 큰스님께는 책이 엄청나게 많았 경선 스님과 원택 스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 고경 2017. 06.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