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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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해진다. 역설적으로 무아(無我)는, 자아에 대한 완전한 만족으

                                                                               로 얻어지는 것이다.
         무아(無我)를

         이루는 방법                                                                  제87칙 — ●
                                                                                 소산의 있음과 없음(疎山有無, 소산유무)


         글 : 장웅연
                                                                                 소산광인(疎山匡仁)이 위산영우(潙山靈祐)를 찾아 물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있음의 구절과 없음의 구절은
                                                                                 등(藤)이 나무에 기댄 것 같다’ 하셨는데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

                                                                                 고 등이 마르면 구절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위산이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쓴 『몰입의 기술』은 내적 보상의 중                                      소산이 일렀다.
         요성에 관한 책이다. 몰입이란 행동과 의식의 합일이다. 등반                                       “제가 사천 리 길을 포단을 팔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화상께서
         가가 암벽과 하나가 될 때, 글쟁이가 글과 하나가 될 때, 도박                                     는 어찌하여 조롱만 하십니까?”

         사가 손에 쥔 패와 하나가 될 때, 그들은 물아일체 (物我一體)                                     이에 위산이 시자를 불렀다.
         를 경험한다. 승리에 대한 집착도 패배에 대한 걱정도 완전히                                       “돈을 갖다가 저이에게 주어라.”
         사라진다. 남과 같이 있을 때는 불편하고 나만 있을 때는 외                                       이어 부촉하되

         롭다. 오직 ‘있기만’ 할 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며 무슨 일                                   “이후 외눈박이용(獨眼龍, 독안룡)이 있어 그대를 파헤칠 것이다
         이든 할 수 있다. 칙센트미하이는 “외적 보상만이 판치는 세태                                      (점파, 點破).”
         가 인간성의 말살과 지구자원의 고갈을 야기한다.”면서 “노동                                       훗날 소산은 명초덕겸(明招德謙)을 만났다. 눈이 하나뿐인 노승
         에서 순수한 재미를 찾는 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었다. 명초가 일렀다.
           무언가에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미치면, 밥을 안 먹어도                                        “위산은 과연 머리와 꼬리가 반듯하건만 지음자(知音者)를 만나

         그만이고 주변에서 비웃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심 (一心)으                                      지 못한 것이 애석할 뿐이구나.”
         로 무심 (無心)이 되면 존재의 이유는 단순해지고 모양은 소박                                      그러자 소산이 물었다.



         ● 고경                                           2017. 06.                                                                50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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