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P. 56

정된 자아란 건 없으니 집착                           가 대오(大悟)를 얻은 장소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에 해당하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무아,                           는 당항성 부근이었다는 설이다.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無我). 한편으론 인생의 문                           무덤가에서의 빛나는 통찰 이후 원효는 당대 엘리트들의 단
                                     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                           골코스였던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 더는 공부할 필요가 없
                                     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독려                            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자각이 수행의
                                     한다(자등명, 自燈明). 나의 욕                        완성임을 시사한다.

                                     심과 분노 때문에 인생이 괴                             끊임없이 넘어지고 부딪히는 게 삶이다. 어느 스님에게 “마
                                     롭다. 한편으론 나의 수고와                           음이 부처의 마음 같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
                                     지혜 덕분에 내가 또 먹고                            었다. 차분하던 스님의 말투가 조금씩 격해졌다. “아무리 힘들

                                     산다. 내가 없어도 산은 높                           어도 숨은 쉬어집니다.” 숨쉬기 힘들 만큼의 고통도 있다. 그
                                     고 강은 흐르며 개는 짖고                            러나 스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살아져요. 어떻게든 살아
                                     자동차는 달릴 것이다.                              진다니까. 삶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러나 내가 존재하는 뒤에라야 그것들은 비로소 삶으로                                       살 수밖에 없으니까 살아가는 겁니다. 겁먹지 마세요. 태백산
         피어난다. 부처님마저 내 마음이 부처님이라고 알아줘야만 그                                      에 생긴 작은 샘이 낙동강을 만들고 기어이 태평양으로 흘러

         때부터 ‘부처님’이다. 이렇듯 ‘나’는 세상의 시작이고 중심이다.                                  가는 법입니다.”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것이다. 자기                                       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살아 있다면, 그냥
         자신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옳든 그르든 잘났든 못                                     살아내는 게 도(道)다.

         났든. 내 눈에 들어온 꽃만, 꽃이다.
           불교는 철저하게 인식론적이다. 세계는 내가 본 만큼만 보
         이고 알아낸 만큼만 나타난다는 입장이다. 시체의 해골에 고
         인 썩은 물을 게걸스럽게 들이켰다는 원효 대사의 설화가 극                                      장웅연    _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
                                                                               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
         명한 사례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마시니 정말 맛있더라는 거
                                                                               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
         다. 날이 샌 뒤에 자신이 마신 물의 실상을 파악한 원효는 지                                    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
         독한 구토 속에서 크게 깨달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                                    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 고경                                           2017. 06.                                                                54 55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