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7년 6월호 Vol.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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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 눈앞에 ‘허공 꽃’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 허깨비의 대 론에 있어 최상의 길로 제시되고 있다. 연수 선사는 자신의 이
표적인 사례이다. 원래는 없던 허공 꽃에 대해 ‘꽃잎의 색깔이 전까지 전해지던 돈점론을 돈오돈수를 중심으로 재편한 인물
붉다’거나 ‘꽃잎이 네 개 정도 된다’거나 ‘꽃잎이 아름답다’라 로서, 특히 마조 스님의 ‘평상심이 도이다(平常心是道)’는 말씀
고 하는 등의 분별을 끝도 없이 일으킬 수 있겠지만, ‘허공 꽃 을 돈오돈수의 관점으로 복원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본래 허깨비와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돈오돈수라는 말 가운데서 ‘돈수’ 곧 ‘단박에 수행한다’는 말
알기만 하면, 방편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도 곧장 허공 꽃과 에 종종 의아함을 일으키곤 한다. 수행은 시간이 걸리는 일인
그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싹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허 데, 어떻게 단박에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
깨비가 공(空)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 논의는 깨달음에 이르 다. 이런 의문에 대해 연수 선사는 허깨비인 줄 알고 벗어나
는 길에 ‘점차’가 있는지의 문제로 곧장 연결된다. 는 그 순간이 바로 큰 깨달음이므로, 방편과 점차가 없이 곧
장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허깨비를 벗어나면 깨달음이라 또한 닦아갈 점차(漸次)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돈오돈수’라는 것은 크게 깨닫는 것
가 없다.’는 것은, 벗어날 때에 대각(大覺)을 완전하게 성 이 바로 수행의 완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관점이라
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벗어남이 그대로 깨달음이니 고 볼 수 있다. 즉 허깨비인 줄 알았지만 그것에 대한 여러 가
평등한 하나의 비춤이고, 이미 앞뒤도 없으니 어찌 점차 지 분별들이 남아 있으므로 허깨비를 더 닦아서 없애야 한다
가 있겠는가. 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리어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는 말씀인 것이다.
『원각경』에서는 허깨비라는 점을 자각하면 어떤 방편을 쓰
지 않고도 단박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점차가 없
다’는 점이 강조된다. 다시 말해 허깨비인 줄 알아서 그것을
벗어나면 곧장 깨달음의 순간이 되므로, 수행에 있어서도 점
차적으로 닦을 일이 전혀 없다는 말씀이다.
허깨비의 자각과 돈오돈수 박인석 _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
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
한편 연수 선사의 『종경록』에는 ‘돈오돈수’의 관점이 수행 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 고경 2017. 06. 48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