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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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눈앞에 있는 하나의 물질, 즉 색의 본질을 궁구해 들어가                                    라는 대목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사(事)란 현상이고 작용

         면 색의 근본은 실체가 없는 공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색                                     이자 겉으로 드러난 속제를 말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모
         을 깊이 궁구해 들어가면 색은 사라지고 오히려 텅 빈 공이                                      습이고,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들이고, 중생세간의 모든 것들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색이 곧 공이라는 색즉시공(色卽是                                     이 사에 해당한다. 중생들은 바로 그와 같은 현상을 좇고, 거
         空)의 이치가 드러난다. 눈앞에 펼쳐진 천차만별하는 사상들                                      짓 모습을 보며 때론 울고 때론 웃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의
         은 바로 공(空) 또는 이(理)라고 불리는 진제가 드러난 것이다.                                  세계가 비록 현상이고 가짜이고 본체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여기서 공과 색은 서로 소통하고, 이와 사는 서로 전환되는                                      할지라도, 그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
         불이 (不二)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을 연민히 여기는 자비심 때문이다.
           현수법장은 측천무후에게 현상과 본질, 색과 공의 관계를                                        비록 중생이 추구하는 현실의 세계가 뜬구름 같은 것일지

         설명한 바 있다. 그때 법장은 뜰 앞에 놓여 있는 황금사자상                                     라도 그곳에 중생의 꿈과 삶이 있다면 현상의 세계, 사의 세
         을 가리키며 이와 사, 공과 색이 상호 소통함을 설명했다. 즉                                    계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중생들의 삶에서는 민주적 권
         반지, 목걸이, 팔찌 등과 같은 장신구들은 사(事)에 속하는 것                                   리를 다투는 것이 중요하고, 노동의 가치와 생존권이 중요하
         들이다. 다양한 모양으로 펼쳐져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금이라                                     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여 정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악을
         는 금속의 속성에서 비롯된 작용이므로 금의 용(用)이라고 할                                     제압하고 선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그런 것들이 옳

         수 있다.                                                                 고 그름을 따지는 분별이고, 그야말로 중생놀음이라고 할지라
           모든 장신구들은 다양한 차별상에도 불구하고 금이라는                                        도 자비심으로 중생의 삶을 살피고, 중생의 마음을 지키는 것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 모든 장신구들을 관통하는 금이라                                       이 보살이다. 이런 이유로 「보현행원품」에서는 보살은 중생들

         는 속성은 진제가 되고, 사물의 본체인 체 (體)가 된다. 이런 맥                                 이 좋아함을 따라서 그들을 성숙시킨다고 했다.
         락에서 보면 이 (理)와 사(事), 공(空)과 색(色), 체(體)와 용(用)은                             넷째, 이 (理)를 관하는 것은 곧 지혜라고 했다[觀理是智]. 자
         겉보기에는 다른 것 같지만 상호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                                     비심으로 속제를 인정하고, 자비심으로 현실의 문제를 긍정
         서 반지와 금은 같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한 불일불이 (不一不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비심은 완전한 진리를 깨닫게 하
         二)라는 중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통합적으로                                    는 것이고,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욕

         바라보는 것이 중도의 눈이다.                                                      망하는 것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해야 중생의 마
           셋째, 사(事)를 관하는 것은 자비를 아우르는 것[觀事兼悲]이                                  음이 고요해지고, 삶에 평화가 찾아온다.



         ● 고경                                           2017. 07.                                                                3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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