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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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것이다. 또 요석 공주와의 인연이라던가, 아드님인 설총에 대

                                                                               한 얘기도 원효 대사와 관련해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내용들
         원효 대사와                                                                이다. 이런 얘기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세대를 전하면

         『종경록』                                                                 서 거듭 전해진 내용들이므로, 굳이 그것의 출처에 대해 면밀
                                                                               히 따져보는 일은 이 방면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필자가 『종경록』을 공부하면서 놀랐던 점 중의 하나가 바
         글 : 박인석
                                                                               로 원효 대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오늘날
                                                                               남아 있는 문헌 가운데 원효 대사가 더러운 물을 마시고 깨달
                                                                               았다는 얘기를 전하는 가장 빠른 시기의 문헌은 바로 『종경

                                                                               록』이다. 또한 『종경록』에는 원효 대사 이외에도 의상 대사의
                                                                               저술 역시 인용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해동의 훌륭한 스님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통일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 대                                 의 말씀을 중국에 널리 전파하는 데 있어 연수 선사의 역할
         사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올 초에                                    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교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670

         여 명 가운데 21.2%가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원효 대사를                                      원효 대사가 시체 썩은 물을 마시다
         선택했고, 성철 선사께서 17.7%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원효                                     오늘날 원효 대사의 중국 유학과 관련해서는 비슷하긴 하
         대사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사상을 근거로 사회의 소통에                                       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계통의 얘기가 전승되고 있다. 두 가

         앞장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고, 성철 선사는 ‘부처님 법                                     지 계통이란, 더러운 물을 마셨다는 것과 귀신의 동티를 만
         대로’라는 정신으로 봉암사 결사를 추진해 승단을 정화하고                                       났다는 것이다. 이 중 전자는 『종경록』 및 혜홍각범 (慧洪覺範,
         자 했던 점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1071~1128)의 『임간록(林間錄)』에 나오고, 후자는 고려의 일연
           우리가 원효 대사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바는, 대사께서                                     (一然, 1206~1289) 스님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1268년)에 나
         의상 스님과 함께 중국 유학길 도중에 해골 물을 마시고 일체                                     온다.

         유심 (一切唯心)의 이치를 깨달은 뒤 중국에 가지 않고 신라로                                      13세기 고려에서 나온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 대사는
         돌아와 많은 저술을 남기고 무애행 (無礙行)을 했다는 내용일                                     의상 대사와 함께 두 번째 유학길을 바닷길로 정하고 백제 땅



         ● 고경                                           2017. 07.                                                                44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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