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7년 9월호 Vo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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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문을 통해 들어가는 영역이 현실의 삶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에 신비한 세계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화엄의 현
          문을 통해 들어가는 세계는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존
          재들의 실상 그 자체다. 따라서 들어갔으나 실은 들어간 바가
          없다. 그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오히려 현실세계
          로 되돌아 나오는 문이 십현문이다. 신비로운 세계, 진리의 세

          계는 중생의 세간 저 편, 피안(彼岸)의 언덕에 있는 것이 아니
          라 바로 이곳 차안(此岸)에 있기 때문이다.
            십현문을 법계연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니까 열

          가지 문이 단계적으로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십현문은 법계연기를 열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것일 뿐 열 개
          의 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성철 스님도 “십현문을 열어
          놓았다고 해서 열 가지 문이 각각 있는 줄 알면 오해”라고 했
 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십현문은 눈앞에 펼쳐진 무수한 사물  다. 법계의 근본은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라는

 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와 같은 연결망을 통해 그들  걸림 없는 자재함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에 십문(十門) 전체가
 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  구비되어 있고, 십문 그대로가 또 하나의 문”이라는 것이다.
 고 있다.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법계연기의 세계를 열 가지 키

 결국 십현문은 연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임을 알 수 있다.   워드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 문
 그래서 십현문을 달리 ‘십현연기 (十玄緣起)’라고 부른다. 화엄  과 저 문이 다르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 개의
 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려면 연기의 실상을 깊이 깨달아야 함  문을 모두 통과해야 화엄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
 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십현연기는 화엄교학의 대표적 사  라 한 문이라도 통과하면 전체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다름없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좀 더 확장하면 불법의 핵심도 연기사  다. 따라서 열 개의 문을 나열하고 있다고 해서 그 모든 문을

 상이므로 십현연기를 아는 것은 곧 불법의 바다로 들어가는   순서대로 통과하라는 것은 아니다. 원융무애한 법계연기의 심
 것이기도 하다.  오한 세계는 중생의 차별변견의 눈, 미혹한 안목으로 쉽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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