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7년 9월호 Vo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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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할 수 없다. 그런 중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열 가지 개념                                      셋째는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이다. 이는 법계의

         을 동원하여 가상의 문을 세워놓았을 뿐이다.                                              두두물물이 갖고 있는 작용[用]에 대한 설명이다. 하나의 개체
                                                                               와 전체가 서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전체는 전체대로, 개체는
           십현문,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문                                                 또 개체대로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둘이 서로 같지
           법계연기의 세계를 십현문이라는 열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                                      않음을 밝히고 있다.
         분은 화엄종의 2조 지엄 (智儼)이다. 지엄은 중국 화엄종의 초                                     넷째는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이다. 이는 체(體)의

         조 두순(杜順)의 뜻을 계승하여 십현문의 체계를 세웠는데 이                                     측면에서 법계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다. 모든
         를 ‘고십현 (古十玄)’이라고 한다. 그리고 화엄종의 3조 법장은                                  존재가 서로를 자유롭게 용납하면 저것이 곧 이것이 되고, 이
         자신의 『화엄경』 주석서 『탐현기 (探玄記)』에서 지엄의 고십현                                   것이 곧 저것이 되어 불이 (不二)의 관계가 됨을 설명하는 대목

         을 토대로 새롭게 십현문을 정리했다. 백일법문은 현수스님의                                      이다.
         십현문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는데, 각 항목의 개요는 다음과                                        다섯째는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무수한 존재
         같다.                                                                   들의 현상에는 숨음과 드러남이 비밀스럽게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이다. 이 문은 십현                                     꽃이 피면 무(無)가 숨고 유(有)가 드러난다. 반대로 꽃이 지면
         문의 총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화엄현해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무가 드러나고 유가 숨는 이치다.

         관문이다. 이 하나의 문에 나머지 아홉 개의 문에서 설명하고                                       여섯째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이다. 미세하게 서로
         있는 모든 이치가 구족되어 있다. 첫 번째 문을 철저히 이해하                                    를 수용하여 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면 화엄의 깊은 바다에 들어간 것이며, 그 문을 통해 다시 현                                    이것이 저것을 받아들이고, 저것은 또 이것을 받아들인다. 그

         실에 펼쳐진 실상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렇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법계는 대립과 충돌을 넘어
           둘째는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礙門)이다. 첫 번째 문이                                     조화와 안정을 유지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총론이었다면 이 문부터는 각론에 대한 설                                         일곱째 인다라망법계문(因陀羅網法界門)이다. 모든 존재가
         명이다. 이 문은 ‘넓음[廣]’과 ‘좁음[狹]’이 걸림없이 상호 소통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법계의 관계성은 마치 거대한 그물
         하는 이치를 밝히고 있다. 모든 사물은 이 (理)라는 보편적 특                                   망처럼 온 우주를 감싸고 있다. 그와 같은 그물망에서 벗어나

         성을 갖고 있으므로 ‘광’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물[事]이 다 똑                                  있는 고립된 존재란 없음을 밝히고 있다.
         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협’이다.                                        여덟째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이다. 보편적 진리는



         ● 고경                                           2017. 09.                                                                3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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