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7년 9월호 Vo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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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에 새겨진 ‘인(忍)’ 자를 봐도 알 수 있다.
『금강경』에 따르면, 이생에 모욕을 받는 건 전생에 지은 악
인욕,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 업 때문이라고 한다. 지은 악업의 정도로 보아서는 큰 고통을
알기 어렵다 치러야 마땅하나 『금강경』 사구게 (四句偈)를 지닌 덕분에 멸
시천대 당하는 정도로 때운다는 것이다. 그런 줄 알고 모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라는 말씀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나’
글 : 이인혜
라는 생각이 없어지면 참을 일도 없다는 것이 이 경의 가르침
이다. 모욕 받을 내가 없으니 참을 일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성내는 마음
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약자 어린이 임
산부 그리고 하근기 중생은 따라할 수 없는 경계이다.
지난 번 보시하기 어려움을 토로한 참에 육바라밀을 다시 이번에 맡은 알바 덕분에 보게 된 『불본행집경 (佛本行集經)』
생각해 보니,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에도 부처님이 인욕을 닦던 이야기가 나온다. 이 경에서 부처
인욕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시에는 주는 기쁨이 따 님은 길고 긴 윤회에 종지부를 찍은 존재로서 그동안 겪어왔
르고 선정에는 고요한 기쁨이 따른다. 이런 덕목들은 행하면 던 자신의 과거 이력을 들려준다. 부처님도 성도하기 전까지
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데 반해 참고 견디는 건 그 자체로 괴 수많은 역경계를 만났고 그 경계들을 잘 겪어내고 도를 이루
로운 일이다. 또한 무턱대고 참으면 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셨다. 전생을 훤히 보는 신통력으로 어느 전생에서 누구와 누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 구로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기억하셨다. 마왕 파순에
래서 몇 가지 전적에서 인욕에 관한 대목을 찾아보았다. 게 해코지를 당할 뻔한 일도, 부인 야수다라에게 혼인 전에
우선 『불교사전』에서는 인욕을 “욕됨을 참고 어려움을 견 무시를 당한 일도, 지난 생의 사연을 다 알기 때문에 기꺼이
디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욕됨은 남에게서 받는 모욕을 뜻한 감내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같은 눈을 갖지 못한 우리
다. ‘인욕’의 ‘욕(辱)’ 자가 말해주듯, 주로 모욕을 참는 것이 인 에게는 한참 먼 이야기다.
욕이다. 어려움은 질병, 재난, 폭행 등을 말한다. 몸으로 참든 지난번에 맡은 알바 덕분에 보게 된 『능엄경』 「정맥소」에서
마음으로 참든, 참는 일이 어렵다는 건 건장한 조폭의 팔뚝 는 인욕바라밀을 여섯 단계로 소개한다.
● 고경 2017. 09. 56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