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7년 9월호 Vo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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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칙 — ● 1년에 두 세 번씩은 감기에 걸린다. 용케 면하는 해도 있지
동산의 편치 않음(洞山不安, 동산불안) 만 거의 이렇다. 찌뿌둥한 기분이 싫어서 환절기가 되면 나름
철저히 대비한다. 손도 자주 씻고 과로도 웬만하면 피하는데
동산양개(洞山良介)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에 어떤 스님이 문병 그래도 어김없이 걸린다. 특히 코가 막히면 글을 쓸 수가 없어
을 갔다. 서 괴롭다.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걸 실감하는 시간이다.
“화상께서 병이 나셨는데, 병들지 않은 이도 있습니까?” 다행히 한 이틀 앓고 나면 글머리가 돌아온다. 이전처럼 열
“있느니라.” 심히 일한다.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벌어야 하고…. 끊임없이
다시 물었다. 나를 못 살게 구는 몸뚱이이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고
“그럼 병들지 않은 이가 병간호를 해드립디까?” 또 그를 위해 산다. 이러구러 산다. 우리는 모두가 적어도 자
“노승이 그를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느니라.” 기 자신에게만은 보살이다.
“화상이 그를 보살필 때는 어떻습니까?” 부처님도 아팠고 큰스님들도 아프다. 그러면 건장한 젊은이
“그에게 병이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들이 당신들의 병수발을 든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엔 늙는다.
잘난 몸이든 못난 몸이든…. 끝내 감옥이고 적폐다. 육체는 시
간과 놀아나게 마련이고 언젠가는 육체를 잃을 존재들은 누구
나 독수공방 과부가 될 운명이다. 혼자 남은 여자가 아들을 낳
아 열심히 키우듯, 인간은 밥 먹고 잠자고 똥 싸는 것 이상의
인간을 남겨야 한다. 몸을 극복한 마음은 깨달음이 된다. 그리
고 나의 깨달음은 장차 다른 이들의 몸속에서 부활할 것이다.
제95칙 — ●
임제의 한 획(臨濟一劃, 임제일획)
임제의현(臨濟義玄)이 원주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 고경 2017. 09. 52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