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7년 10월호 Vol.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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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속에서 만나는 작고 미세한 존재를 통해 전체의 세계로 확 계의 모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 강물, 나무, 바람 등과 같이
장되는 인식의 문이다. 천차만별 (千差萬別)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곧 ‘사’이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은 저마
광협자재무애문 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수많은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개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은 광협자재무애문(廣 별적 특수성에 의해 그들 존재는 비로소 자기 자신만의 정체
狹自在無碍門)이다. 넓음을 의미하는 ‘광(廣)’과 좁음을 의미하 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을 관통하는 보편적
는 ‘협 (狹)’이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동시 이법이 있으니 이를 ‘이 (理)’라고 한다.
구족상응문은 총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으로 치자면 조감 이와 사의 관계에 대해 현수스님은 “사(事)가 이(理)와 같이
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설명하는 내용은 십현문의 각 두루하므로[事如理徧] 넓고[廣], 사상(事相)을 무너뜨리지 않으
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첫 번째 주제는 전체와 부분이 원활 므로[不壞事相] 좁은 것[狹]”이라고 했다. 여기서 ‘사여이편’과
하게 소통함을 설명하고 있다. 집이 광이라면 문이나 담장이 ‘불괴사상’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첫
나 천정 등의 부분은 협에 해당한다. 집이라는 전체와 각 부 째, ‘사여이편 (事如理徧)’이란 무수한 개별적 사상들은 각자 자
분이 조화롭게 소통하는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는 안목이 광 신만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상들에게도 보편
협자재무애문이다. 적 이법이 두루 편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보편적 이법
넓음을 의미하는 광은 보편적 이법 (理法)을 말하고, 좁음을 이 개별적 존재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존재가 똑같
의미하는 협은 각각의 특수성을 띤 개별적 사상(事相)을 말한 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개별자들은 각각의 특수한 성격을 그
다. 성철스님은 광협의 관계에 대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면 대로 가지고 있는데 이를 ‘불괴사상(不壞事相)’이라고 했다. 결
서, 근본 자체로는 시방세계에 널리 펼쳐져 있습니다. 광대하 국 모든 존재는 개별적 사상을 띠고 있어 개체로 존재하지만
게 펼쳐져 있는 그런 근본, 즉 이 (理)와 체(體)의 측면에서 광 동시에 그와 같은 모든 특수성을 관통하는 보편적 이법을 함
(廣)이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산과 물은 개별적 존재지만 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개별적 존재를 관통하는 보편적 특성이 있으니 그것 성철스님의 표현을 빌자면 협은 “흰 것은 희고 붉은 것은
이 바로 우주적 이법 [理]이거나 근본[體]이라는 것이다. 붉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을 사상(事相)이라고 한 로 천차만별의 사상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광
다. 이 사(事)의 개념에 대해 성철스님은 “우주법계인 시방세 이란 협으로 표현된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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