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7년 10월호 Vol.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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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준만큼 힘을 빼앗아간다. 반면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내 이

 름을 부를 때, 그게 그렇게 참 좋다. 왠지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멀리 있어도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숨어 있는 나
 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제96칙 — ●

 구봉의 긍정치 않음(九峰不肯, 구봉불긍)


 구봉도건(九峰道虔)이 석상경저(石霜慶諸)의 시자로 살던 중 석

 상이 열반에 들었다. 이에 대중은 큰방의 수좌에게 청해서 차기
 주지를 정하도록 했다. 이때 구봉은 “내가 물어보기까지 기다
 려라. 만약 먼저 간 스승의 뜻을 안다면 스님과 같이 시봉을 하
 리라.” 하고는 수좌에게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고 쉬라. 한 생각이 만 년을 간다.

 식은 재와 마른 나무같이 하며, 한 가닥의 삼베를 희게 도련하
 라.’ 하셨는데,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일을 밝히신 말씀입니  다면 향 연기가 솟을 때 앉은 채로 열반에 들지 못하리라.” 하
 까?”        였다.

 이에 수좌가 말했다.   말을 끝내자마자 앉은 채로 입적했다. 구봉은 끌끌 혀를 찼다.
 “한 빛깔의 일[一色邊事, 일색변사]을 밝혔느니라.”   “앉아서 죽고 서서 벗어나는 길이 없지는 않으나 스승의 뜻은
 구봉은 “그렇다면 아직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꿈에도 보지 못했군요.”
 수좌가 불쾌한 듯 물었다.
 “그대는 나를 긍정치 않는다지만 향을 싸가지고 와서 제자로서  총림(叢林)은 규모도 제일 크고 스님도 제일 많은 절이다. 방

 의 예를 드리려 한 것은 어찌하겠는가?”   장(方丈) 스님이 제일 높다. 방장이란 명칭은 재가자의 신분으
 이어 향을 사르면서 이르되, “내가 정녕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  로 부처의 반열에 오른 유마(維摩)거사의 거처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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