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7년 10월호 Vol.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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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사방일장(四方一丈)이었다는데 그야말로 사방이 어른                                       꼴을 보고 싶어 하면 괴로워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좋다. 나

         의 키 정도에 불과할 만큼 작았다는 뜻이다. 검박했던 성품을                                     는 대부분 내가 죽인다.
         상징한다. 대신 유마는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설법 공간을
         두었다. 넉넉한 자비를 표상하는 동시에 포교의 핵심은 법문                                        제97칙 — ●
         이고 감화라는 함의를 내포한다. 한편 수좌(首座)스님이 총림                                       광제의 복두건(光帝幞頭, 광제복두)
         의 2인자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좌선하는 이들 가운데 우

         두머리. 선 (禪)에 대한 안목이 높아 수행자들을 지도한다.                                       동광제(同光帝)가 흥화존장(興化存獎)에게 자랑했다.
           방장스님이 돌아가셨으니 수좌스님이 대를 잇는 것이 상례                                        “과인이 중원의 보배를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매기는 이가 없
         다. 하지만 구봉은 평소 수좌의 됨됨이가 탐탁지 않았던 모양                                       소.”

         이다. 어깃장을 놓으며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 달라 했다. 시자                                      흥화가 말했다.
         (侍者). 수좌 입장에서는 큰스님의 비서 따위가 큰스님 행세를                                      “폐하의 보배를 보여주소서.”
         하려 한 것이니, 몹시 불쾌했을 법하다. ‘일색변사’란 공간적으                                     광제가 양손으로 복두건의 꼬리를 끌어당겨 보였다. 흥화가 말
         로나 시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일체가 평등한 세계를 뜻한                                         했다.
         다. 시작도 끝도 삶도 죽음도 양반과 상놈도 없는 곳이다. 수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흥정하겠습니까?”

         좌는 죽음이 따로 없으며 자신이 죽음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아예 죽어버렸다.                                                동광제(885~926)는 중국 당나라 이후 들어선 5대10국 가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으스대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산 속                                     운데 후당(後唐)을 건국한 자다. 속명은 이존욱(李存勖) 묘호

         으로 들어가 버린 꼴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괘념                                     는 장종(壯宗). 아버지 이극용이 죽으면서 화살 세 개를 줬는
         치 않는 것이 참된 자유라는 생각. 또한 대나무는 자기를 지                                     데 “양(梁)과 연(燕), 거란(契丹)의 원수를 꼭 갚으라.”고 유언했
         키려다 자기를 해하고 말지만 갈대는 볼썽사납게 흔들릴지언                                       다. 즉위한 뒤 북쪽으로 거란을 공격하고 동쪽으로 연을 멸망
         정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수좌는 구봉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시킨 뒤 후량(後梁)을 정복하고는 화살을 태묘(太廟)에 바쳤다.
         버렸다. 방장 자리는 구봉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반면 재위는 고작 3년에 그쳤다. 오만방자해져서 나라를 내버

           사람 하나 골로 보내기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오기’라는                                    려두다가 곽종겸 (郭從謙)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화살에 맞고
         게 이리 무섭다. 누가 흔들면 흔들려줄 줄 알고, 괴로워하는                                     죽었다.



         ● 고경                                           2017. 10.                                                                5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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