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7년 11월호 Vo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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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따지지 않는다. ‘2’가 있으면 ‘2’를 주고, ‘1’밖에 없으면 ‘1’ 고 사람에게 짓밟히면서 사람으로 커간다.
을 준다. 내가 본 부처님은 생각이 깊고 따뜻한 사람, 생각이 미운 자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간악하고 비열함에도, 너무
깊어서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솔직하고 잘 살고 있다는 괘씸함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세상은 합리적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붓다의 삶이다. 모든 공덕은 열심히 살 이지도 자비롭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돌이켜 생각하면,
아온 내가,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내가 증오하는 누군가에게는 합리적이고 자비롭지 않은가. 그
러므로 세상은 나에게만 합리적이고 자비롭지 않은 것이다.
제99칙 — ● 결론적으로 세상이 합리적이고 자비로우리란 믿음은, 기본적
운문의 발우와 통(雲門鉢桶, 운문발통) 으로 욕심에 젖어있는 마음이다. ‘티끌마다에 나타나는 삼매’
란 ‘일상 속의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밥 한 술과 물 한 모
어떤 승려가 운문문언(雲門文偃)에게 물었다. 금에서 고기반찬을 바라거나 술 한 부대를 바라는 나를 본
“어떤 것이 티끌마다에 나타나는 삼매입니까?” 다. 내가 나의 적 (敵)이었던 것이다. 밥만 먹어도 좋고 물만 마
운문이 답했다. 셔도 좋은 마음이라면, 어디를 가도 비굴하지 않을 것이요 어
“발우 안의 밥이요, 통 속의 물이다.” 디에서도 삼매를 얻을 것이다. 혹자들은 신비를 말하고 초탈
을 말하지만, 최고의 삼매는 만족감이겠다.
속세의 다른 이름이 진토(塵土)다. 티끌과 먼지가 뒤덮은
땅, 더럽고 혼곤한 땅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예토(穢土)라 한 제100칙 — ●
다. ‘똥 예’ 자를 쓴다. ‘사람냄새’는 정답다지만 돈 냄새와 섞 낭야의 산하(郎耶山河, 낭야산하)
이면 필시 코를 틀어쥐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 피가
튀거나 애가 튀어나온다. 싸움은 싸움대로 연애는 연애대로 어떤 승려가 낭야혜각(郎耶慧覺)에게 물었다.
업 (業)을 낳는다. 이렇듯 사람이 많으면 피곤한데 정작 사람이 “본래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생겼습니까?”
없으면 외로워진다. 비단 감정적인 고독감을 일컫는 것만은 낭야가 말했다.
아니다. 사람을 만나야 일거리를 얻고, 싫은 사람 앞에서 웃 “본래 청정하거늘 어찌하여 산하대지가 생기는가?”
어준 만큼 더 많은 돈이 생기는 법이다. 시련도 모함도 사람이
만들어서 준다. 사람은 사람에게 공손하면서 사람대접을 받 세상만사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아무
● 고경 2017. 11.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