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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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리 가지 않는다[去此不遠]고 했다. 진정한 구원은 서방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내면에 흐르
 드러난 반달과       고 있는 무명 (無明)의 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반달      밤하늘에 떠가는 반달도 서방정토로 가는 배가 아니라 존재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 되어야 구원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화엄학의 대가 현수법장도 윤극영처럼 반달

 글│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읽어내는 상징적 의미는 달
               랐다. 법장은 반달을 서방정토로 가는 구원의 배가 아니라 존

               재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해했다. 법장은 십현문(十玄
 ○●○           門)의 다섯 번째 문을 설명하면서 반달의 비유를 동원한다. 일
               체 모든 존재는 반달처럼 숨어 있는 부분과 드러난 부분으로

 반달과 존재의 실상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장은 “은현 (隱顯)은 조각달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밤하늘이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냉  이 서로 비추는 것 [片月相暎]과 같다.”고 비유했다.
 기가 차가울수록 밤하늘에 떠 있는 달빛은 더욱 고고해지는   밤하늘에 떠 있는 조각달은 우리 눈에는 반쪽만 보인다. 하

 법이다. 물론 밝기로 말하자면 보름달이 단연 으뜸이지만 상징  지만 반달은 둥근 달이 찌그러져 반쪽이 된 것이 아니라 또 다
 적 의미로 보자면 조각배처럼 생긴 반달이 훨씬 풍부하다. 그  른 반쪽이 숨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 눈에
 래서인지 시인 윤극영은 서쪽 하늘로 떠가는 반달을 보며 “돛  보이는 반쪽은 ‘드러남[顯]’이고, 보이지 않는 반쪽은 ‘숨음[隱]’

 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이다. 우리는 드러난 반쪽만 보고 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라고 노래했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의 어둠이 고해 (苦海)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 또 다른 반쪽이 숨어 있다. 밤하늘에 떠가는

 반달은 고해를 건너 극락으로 가는 구원의 배로 읽어내고 있  반달을 보고 시인은 서방으로 가는 구원의 상징으로 읽었고,
 음을 알 수 있다.    법장은 있음[有]과 없음[無], 드러남과 숨음을 동시적으로 보여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꼭 서쪽으로 가야만 하는   주는 ‘은현동시 (隱顯同時)’의 이치로 읽어낸 것이다.

 것은 아니다. 육조대사는 서방정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멀  반달처럼 반은 드러나고 반은 숨어 있는 것은 존재에 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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