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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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모순적 특성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들은 그와 같은 상호 대                                                  체가 없는 것은 상즉문(相卽門)이다.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
           립적 특성을 동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보이는 반쪽만 있다고                                                   른 것이 비록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이 은현문(隱顯門)이다.”
           고집하면 그것은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유견 (有見)’이라는 변견

           이 된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반쪽에 집착하면 ‘무견 (無見)’이라                                               법장은 하나의 존재에 들어 있는 드러남과 숨음이라는 대립
           는 또 다른 변견에 빠지게 된다. 존재의 실상은 반달처럼 유와                                                적 특성을 ‘상섭 (相攝)’이라고 표현했다. 상섭이란 ‘상호 포섭’이
           무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존재는 상호 모순적인 특성                                                 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풀자면 ‘서로 움켜쥐다’ 정도로 해석할

           을 동시에 내포하는 중도성 (中道性)을 띠고 있다.                                                      수 있다. 드러나 있는 반달은 숨어 있는 반쪽을 움켜쥐고 있고,
                                                                                             숨어 있는 반쪽은 또 드러난 반쪽을 움켜쥐고 있다. 이렇게 서
             비밀스럽게 작용하는 드러남과 숨음                                                              로가 서로를 움켜쥐고 있는 상섭은 ‘상입 (相入)’과 ‘상즉(相卽)’이

             십현연기는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열 개의 문이다. 이 열                                                라는 특성으로 설명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해 들어가는
           개의 문은 법계의 실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존재의 중도적                                                  것이 상입이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해 들어가면 네가

           특징을 드러내는 문이다. 그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다섯 번째                                                 곧 나이고, 내가 곧 네가 되는 상즉이 된다.
           문이 바로 반달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비밀은현구성문(秘密                                                   상입문(相入門)이란 거울이 서로의 반사면에 의지해 드러나
           隱顯俱成門)’이다. 눈앞에 펼쳐진 하나의 존재에는 겉으로 드러                                                는 것을 말한다. 이 거울은 저 거울에 의지해 자신의 형상을

           나 있는 부분과 숨어 있는 부분이 비밀스럽게 갖추어져 있다                                                  드러내고, 저 거울은 이 거울에 의지해 자신의 형상을 드러낸
           는 것이다. 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의미한다. 보이는                                                다. 두 개의 거울은 ‘호상의지 (互相依支)’의 관계를 통해 존재함

           대상이라는 유(有)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인 무(無)도 동시에 있                                               으로 두 거울은 모두 드러난다. 반면 상즉문(相卽門)이란 바닷
           다. 그래서 법장은 존재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물과 파도가 서로 합쳐질 때 서로의 모습을 부셔버리는 것과
           가지 문을 통해 설명한다.                                                                    같다. 이 관계는 바닷물은 파도를 삼키고, 파도는 바닷물을 삼

                                                                                             킴으로 ‘호상형탈(互相形奪)’이라고 한다. 상대의 모습을 박탈했
                “상호간에 서로 포섭 [相攝]하므로 서로 숨고 나타남[隱顯]                                            기에 상대의 모습은 없다.
             이 있다. 말하자면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을 볼 수 있                                                 이것이 저것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가는 쪽은 숨어버리고,

             는 것은 상입문(相入門)이고,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의                                               받아들이는 쪽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숨음과 드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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