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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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을 향하면서, 산을 오르고 물을 마신다.

           소는 소여서, 소가 아니다                                                                      #1.




           글│장웅연                                                                               계룡산 동학사에서 수행하던 학명(學明) 스님이 마을에 내려

                                                                                             갔다가 이 씨 성을 가진 진사(進士)를 만났다.
                                                                                               = 한가한 농부가 산보를 나선다.
           ○●○                                                                                 “대사(大師)는 요새 중노릇 어떻게 하시오?”

                         태어난 것들은 언젠간 죽는다. 태어나면 죽는                                              = 소를 만나서 고삐를 건다.
           다. 태어나니까 죽는다. 반면 태어나지 않는 것들은 언제든 죽                                                  “아, 소승이야 그저 경전 보고 계율 지키고 부처님 시봉(侍
           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으니까                                                 奉)하고 절 가꾸고 살지요. 뭐 이런 게 중노릇 아니겠소?”

           죽지도 않는다. 산 위에는 꽃이 피고 물 아래에는 민물장어가                                                   = 고삐는 저렴해서 누구나 사갈 수 있다.
           간다. 다들 태어나 있다. 꽃이 지는 골짜기에서 그물을 든 사람                                                 이에 이 진사는 혀를 찼다. “허허, 대사. 그렇게 중노릇하면

           들이 희희낙락하다. 누군들 죽고 싶겠느냐마는, 누구든 죽어                                                  소밖에 더 되겠소.”
           야 또 누구든 산다.                                                                         = 고삐가 단단히 잘 걸렸는지 점검한다.
                                                                                               스님도 그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처사님, 그

             그래도 새봄이 오면 새로운 꽃이 다시 일어선다. 나아가 새                                                러면 어떻게 해야 소가 안 되겠습니까?”
           봄이 이어지면 새로운 꽃들은 새로웠던 꽃으로 으깨진다. 지나                                                   = 아무리 착한 개라도 낯선 행인이 주는 밥에는 머뭇거리게

           간 풀들은 켜켜이 쌓이는 바람 밑에 깔려 늙고, 부지런히 똥을                                                마련이다.
           누던 이들은 똥이 된다. 용가리통뼈가 아닌 나 역시 태어나지                                                   “명색이 선승(禪僧)이란 사람의 대답이 그래서야…. 소가 되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돌아갈 때 같이 돌아주지 않으면, 돌아                                                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고 해야지!”

           버린다. 다행히 이제는 밥 대신 욕만 먹어도 배가 조금은 부르                                                  = 기분이 상한 행인이 밥그릇을 부숴버렸다.
           다. 똥이 되길 기다리면서, 먹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날                                                  한겨울 냉방에 틀어박혀 24시간 화두만 파던 경허는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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