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8년 2월호 Vol.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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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은 서로 공존
할 수 없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불안한 구조물’이라는 생각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떨쳐버릴 수 없다. 더구나 그런 대립과 갈등은 비단 어제 오늘
연결된 세계 만의 일도 아니고, 인간에게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인류 역
사를 돌아보면 인간들은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을 일삼아 왔
고, 동물들의 삶 또한 약육강식의 질서 속에 먹고 먹히는 고달
글│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픈 삶의 연속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류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으며, 동물
○●○ 들도 인간의 과도한 개입만 없다면 생태적 균형을 이어가고 있
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불안해 보였는데 어떻게 이들
서로 포용하며 굳건하게 서 있는 존재들 의 삶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출퇴근 전철은 뉴스를 읽는 공간이 되었다. 스 우리는 그 답을 화엄 (華嚴)의 눈을 통해 찾을 수 있다. 화엄
마트폰 속에 세상의 모든 뉴스가 들어 있으니 손바닥에서 세 의 눈으로 보면 대립과 갈등이 빚어낸 불안한 모습은 무명 (無
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편리하게 접하 明)에 싸인 중생들이 초래한 왜곡된 현상일 뿐이다. 어리석음
는 소식들이 하나같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라는 점 에 눈이 멀어 존재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위
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책상 위에 핵 단추가 있다고 엄포를 놓 태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 트럼프는 그보다 더 큰 핵 단추를 가졌다고 맞장구를 친 그와 같은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 존재의 실상(實相)으로
다. 어디 그뿐이랴! 아프리카는 여전히 굶주림과 분쟁으로 고 들어가는 것이 화엄의 십현문(十玄門)이다. 십현문의 문을 열고
통받고 있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과 유럽까지 세계 곳 들어서면 모든 존재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
곳에는 증오에 가득 찬 테러가 되풀이되고 있다. 과 조화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실상의 세계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상은 백인과 흑인, 기독교와 이슬람, 로 들어가는 여섯 번째 문이 바로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
남과 여, 진보와 보수,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 立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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