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8년 2월호 Vol.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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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게 반영된다. 이 역시 이것과 저것이 끝없이 겹쳐지는 존재의
연기적 관계성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나아가 무수한 구슬은 존
재의 다양성과 개별적 자성 (自性)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나발타(求那跋陀)
삼장의 말씀
이처럼 십현문은 존재와 존재의 관계성이 끝없이 확산되고[周
遍]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포용되는[含容] 실상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인드라망의 개념은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것에 글│박인석(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머물지 않고 생태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개념으로 각광받
고 있다. 생태철학자들은 하나의 존재가 갖는 보편적 관계성을
설명할 때 ‘거미줄(web)’의 비유나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이라 ○●○
는 표현을 사용한다. 특히 게리 스나이더는 인드라망의 사유 『명추회요』의 100권-3판(765쪽)에는 구나발타
에서 영감을 얻어 ‘먹이 그물(food web)’이라는 개념으로 생태 삼장의 말씀이 ‘마음이 그대로 이치이고 이치가 그대로 마음
계를 설명한다. 생태계의 모든 존재들은 먹이사슬을 타고 서로 이다’라는 제목 아래 짧게 수록되어 있다. 각주를 보면 그 말
에게 에너지를 주고받는 상호관계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씀은 『능가사자기 (楞伽師資記)』라는 문헌에서 인용되었는데, 이
다. 이처럼 십현연기는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담 부분을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론에 머물지 않고 생명과 생태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도 주목 『능가사자기』라는 문헌은 7세기 중국 선종사의 흐름 가운데
받고 있다. 출현했다가 근 천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추회요』나 그것의 바탕이 되는 『종경록』에도 『능
가사자기』라는 제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이 발견된 20세
서재영 기 초에 이 문헌의 전모가 공개된 이후, 오늘날 우리들은 이들
—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 을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명추회요』의 내용이 바
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
로 『능가사자기』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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