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8년 2월호 Vol.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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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일을 할 수가 있느냐?” “누구한테 배웠냐?” “남조선에는 불
경을 번역하는 여성 동무가 몇이나 되느냐?” “젊었냐, 나이가
들었냐?” “남자보다 번역을 잘하는 동무도 있느냐?” 주로 이런
질문들이었다. 남북에서 모인 열여섯 명 중에 여자가 하나뿐이
고 발표자 두 명 중에 하나가 여자였으니 다들 놀란 눈치였다.
“뭬야?” 한마디로 쳐부수고 싶었지만 꾹 누르고, 남한은 경전
을 번역하는 일에 남녀가 따로 없다, 여자도 얼마든지 배워서
번역한다, 실력도 다들 탄탄하다, 이런 말들로 체제선전에 열을
다. 대장경을 번역하기 전에는 『리조실록』을 번역했고, 그 팀이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대로 대장경 번역을 맡았다고 한다. 그들을 중국 심양의 한 거꾸로 나는 그들에게 놀랐다. 우선 연구사들의 연령대가
호텔에서 만나서 ‘남북한 대장경 번역 비교’를 주제로 학술회의 30대부터 70대까지 고루 분포해 있어서 고전 번역의 맥이 잘
를 가졌다. 남쪽의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여덟 명, 북쪽의 민 전승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또 하나 놀란 점이 있다. 발표가 시
족고전연구소에서 여덟 명, 전부 열여섯 명이 모였다. 내게 주 작되기 전에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려고 담소시간을
어진 임무는 『오분율』을 가지고 남북한의 번역 스타일을 비교 가졌는데, 북쪽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전부 담배를 꺼내 들었
하는 것이었다. 다. 30대와 70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맞담배를 피우면서 대화
주제에 대해 깊이 연구할 시간도 없이 엉성하게 쓴 논문을 를 나누는 모습에 문화충격을 받았다. ‘자기네가 평등사회라
들고 간 터라, 한문 실력이 짱짱하기로 소문난 그들이 무슨 질 는 것을 맞담배질을 통해 선전하려는 전략이 아닐까’ 의심하기
문을 해올지 내심 떨고 있었다. 더구나 ‘말 많으면 공산당’이 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충격이 가시기 전에 그들의 말
라고, 그 말 많다는 공산당이 아니던가. 덜덜 떨면서 겨우 발 에 한 번 더 놀랐다. 두 군데 번역소가 있어서 거기 머물며 줄
표를 마치고 나니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많이 받 창 번역만 한다는 것이다. 금강산과 묘향산. 경에서 얼마나 자
은 질문은 경전 번역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북조선에는 불경 주 듣던 이름이던가. 얼마나 많은 고승들의 자취가 서려 있는
을 번역하는 여성 동무가 하나도 없다”면서 “여자가 어떻게 이 산이던가. 그런 유서 깊은 곳에서 경전을 번역하고 있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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