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8년 3월호 Vol.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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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고통을 회피한다. #5. 일타의 달걀
남을 괴롭힌 만큼 내가 즐겁고 남에게서 빼앗은 만큼 내가
배부른 것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조국이고 지구촌이다. 한편으 삶은 계속되고, 가난해도 삶은 계속되고, 아파도 삶은 계속
로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 되고, 꿈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삶이 계속되길 바라도 삶은 계
의 핵심이다. 실외기의 곤욕스러운 열풍은 어딘가에서 패배하고 속되고, 계속되길 바라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고, 구세주가 내
희생됐을 자들의 원한이거나 마지막 날숨의 집합일 것이다. 그 려와도 삶은 계속되고, 목숨을 잃어도 또 다른 몸 받아 삶은
리고 꿈속의 원귀로든 더워지는 북극으로든, 죄업은 반드시 살 계속되고, 당장 죽을 것만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지겨워 죽을
아남아서 기어이 되돌아온다.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에 것만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는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는 되돌아온다. 아침 식탁에 올라온 북어대가리가 언젠가 내게 ‘계속된다’는 생각에서도 계속되고, 계속되는 속에서도 계속되
주어졌던 참수(斬首)였다고 믿게 되면, 밥을 조금만 먹게 된다. 고, 계속되지 않는 속에서도 계속되는데…, 계속되어도 좋고 계
불교에선 유위법 (有爲法)도 몹시 경계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 속되지 않아도 좋다는 속에서는, 귀신같이 계속되지 않는다.
라도 ‘내가 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죄다 유위법이어서 죄업의
씨앗을 남긴다. 으스대거나 보상을 바라거나 가르치려들거나 동곡일타(東谷日陀, 1928~1999)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
조건을 달거나 등등. 인간 ‘위주(爲主)’의 삶이든 본인 위주의 삶 을 때의 일이다. 보좌하던 젊은 제자는 휴게소에서 파는 삶
이든 응당 악행이거나 조작이거나 최소한 유치해진다. 은 달걀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다.
밥벌이를 위하여 살면 밥벌레가 된다. 이에 반해 억지로라도 =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살고 싶다면 돌멩이라도 씹어야 한다.
남을 위해 살면 작위 (作爲)의 대가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래
하지만 대율사(大律師)를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서 차마 속
서 못된 남편을 위하여 살아야 못된 남편이 불행해진다. 받지
내를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꼼수를 떠올려 물었다.
말아야 할 복(福)을 받으면, 언젠가는 저승사자가 그 복을 몸에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 그 구멍에서 밥도 나오
서 뜯어간다.
고 애도 나오고 깨달음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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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복수는 “큰스님, 무정란은 생명이 아니죠?” “응, 아니지.” “그럼 무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정란은 먹어도 살생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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