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8년 3월호 Vol.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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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덩이가 빗물을 삼켜도 죄는 아니지. 란을 삶은 게 맞는지, 맹세할 수 있는지 물어본 뒤에 확답을
받아낸다. 점원이 자기는 모르겠다거나 도대체 그걸 내가 어떻
“큰스님! 입(아궁이)을 만들었으면 밥(장작)을 주어야지요.”
게 아느냐고 치받으면, 사장을 부르라고 노발대발한다. 어이없
= 너무 놀라면, 문다.
어하는 사장도 모르겠다고 하면, 계란을 가게에 공급한 양계
일타가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얘야, 이 세상에 업자의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지랄발광을 한다. 무정란을 찾아
청정한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왜 하필 똥구멍에서 나 내고야 말겠다는 목표에만 골몰한 상태이므로, 꼴불견이야 행
오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 인들의 몫이요 부끄러움이야 지인들의 몫일 뿐이다. 양계업자
= 단, 지렁이가 웅덩이를 파먹지. 에게 무정란 확인서를 요구하고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 신선놀음에 썩었을 도끼가 여기서 썩는다.
무정란(無精卵)은 암탉이 수탉 없이 혼자 낳은 알이다. 병아 기어이 모든 행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때부턴 마음
리로 부화하지 않는다. 고기가 아니며 죽어도 피 흘리거나 비 편하게 닭의 똥구멍을 핥으면 된다. 버스와 친구들은 이미 떠
명을 지르지 않으니, 육식이 허용되지 않는 스님의 신분이어도 났고 휴게소는 머지않아 문을 닫을 테지만, 똥구멍이 참 달다.
먹을 수 있다. ●
아쉽게도 무정란과 유정란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자존감’ 타령.
만 무정란이 조금 더 크고 껍질의 색깔도 진하다고 전한다. 그 남보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똥을 싸기 위해.
래봐야 피장파장이다. 정 무정란을 골라서 먹고 싶다면 어두
운 조명에서 손전등을 비추면 되는데, 흐릿하게라도 핏줄이 보
이면 유정란이요 안 보이면 무정란이다. 하지만 삶은 달걀이라
면 핏줄이 남아날 리 없다. 도통 감을 못 잡겠다면 껍질을 까
서 노른자에 배아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살피면 된다. 물론 미 장웅연
세하게나마 흔적을 확인하려면 무조건 한입 베어 물어야 하 — 집필노동자. 1975년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신문>에
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본명은 ‘장영섭’. 글 써서 먹고 산다. 포교도 한다. 그간 『불교에 관한 사
니, 자칫 유정란일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49(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등 9권의 책을
최후의 방법은 달걀을 파는 점원을 괴롭히는 것이다. 무정 냈다. 최근작으로 『불교는 왜 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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