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8년 4월호 Vol.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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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수치를 뒤집어쓸 거라는 두려움. 잘

               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사람이 이런 두려움
 내 몸은 내 꺼      을 느껴야 한다는 현실이 기막힐 뿐이다.

                 여자가 남자와 같은 직업을 갖고 같은 지위에 오르려면 남
               자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한다. 검사가 되기까지,

 글│이인혜         무대에서 배역을 맡기까지, 회사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남자들
               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서야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절박

               한 생계가 걸렸든, 간절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든, 여자에게는
 ○●○           그래서 그 일이 인생을 걸 만큼 중요하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를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잃느니
 와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가장 영향력   덮고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난다. 당하고도 밝히지 못하는

 있는 뉴스였고 그 사람이 검사였기 때문에 폭발력은 대단했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검사가 된 똑똑한 여자도 피해 사
 다. 그것을 계기로 사회 각계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이른바 ‘미  실을 밝히는 데 장장 8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투’ 운동이 한창이다. 가해자가 밝혀질 때마다 다들 놀라움을   남자든 여자든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찍히면 곤
 금치 못한다. 그러나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법조계, 영화계, 문  란하다. 어느 바닥이든, ‘그 바닥’이라는 데는 왜 그렇게 좁은

 학계, 학계를 막론하고 그 바닥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바닥이라
 다. 단지 말하지 못했을 뿐.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이제껏 왜 말  도 여자한테는 더 좁기 마련이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질서로

 하지 못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짜진 바닥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넓어도, 같은 하늘 아래
 부처님께서는 『화엄경』 「십지품」에서 두려움의 종류를 다섯   살아도,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지위에서 불

 가지로 들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고,   평등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서는 복잡한
 두 번째가 오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자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이론을 말해주는 다양한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기성 종교들

 말하지 못하는 데는 이 두 가지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일자리를   이 불평등에 한 몫을 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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